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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칼럼 [Column]

[다문화/한국이슬람] 기독교 대학의 이슬람 기도실을 보며

이슬람전문가 2019-07-15 (월) 20:43 1개월전 333

지난 77일 한 지상파 방송을 통해서 기독교 대학에 이슬람 기도실이 생겼다는 뉴스를 보았다. 이 일에 대해서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이 속 좁은 사람의 편견으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기도실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마 많은 내부 갈등이 있었을 것이다. 기독교 대학으로서 건학이념을 따라 이슬람 기도실은 절대로 안 된다는 의견과, 열린 마음으로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 줘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다가 결국은 허락하는 쪽으로 결정이 되었기에 기도실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독교 정신으로 잘 양육된 후진들을 길러낸다는 중차대한 사명을 일찍이 깨닫고 엄청난 재정을 동원하여 대학을 건립하기까지 많은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와 수고가 있었을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것을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고 간단히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흔히 인도주의적인 기독교라든지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기독교,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웃음으로 수용하는 착한 기독교, 가슴을 활짝 열고 넓은 마음으로 타종교 뿐 아니라 원수라도 포용할 수 있는 기독교의 모습을 보인다면 그렇게도 원하는 교회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보인다. 물론 모든 사람들에게 착하게 보이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성경에서도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자여야 한다는 말씀이 있다(딤전3:7).

 

서양의 교회들도 역시 마찬가지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면 독일의 튀빙겐 대학에서 201110월부터 이슬람 신학과를 신설한 것이 대표적 케이스이다. 독일 기독교의 대표적 명문으로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튀빙겐 대학에 이슬람 신학과가 개설되고, 그 학과를 졸업하면 이슬람을 가르치는 이맘이 된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에서는 이 일에 국민의 세금을 수혈해 줌으로 독일을 사랑하는 기독교인들에게 아픔을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튀빙겐 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대학에서 이슬람 학과를 개설하여 정부의 지원을 받아 이맘들을 길러내고 있다. 유럽에서 정부의 후원을 받아서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이슬람에 대해서 제대로 알면 무작정 혐오하는 현상이 수그러들고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012.1.17. 기독일보)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뉴욕의 성공회 주교가 아프간 전쟁에서 파괴된 모스크를 재건축하기 위해서 모금을 해서 보냈다. 이에 대해서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뉴욕의 마가 감독은 모스크의 재건축은 기독교인들의 의무이며 다원주의는 문명사회의 부분이다. 인류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으며 다른 사람들의 종교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뉴욕타임즈2003.2.4.)

이런 일들을 보고 박수를 치며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크리스천들이며 열린 마음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이들을 통해서 기독교의 이름이 더욱 존경을 받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말인가?

 

성경 말씀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고 말씀하셨다. 세상이 그런 식으로 흘러간다고 해서 우리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는 주장은 항상 옳은 것이 아니다.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유럽의 선진국들이 다문화를 외치며 이슬람을 받아들였다가 이슬람 때문에 무너졌는데, 우리도 그들을 그대로 따라가야 한다는 것은 억지이며 무지의 산물이고 그 결과는 재앙이 될 것이다.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이며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기독교 지도자는 영적인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라고 말했다.

 

그러면 예수님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셨을까? 이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전에

먼저 이슬람의 기도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슬람의 기도는 아랍어로 쌀라(Salat)라고 하고 이란에서는 나머즈(Namaz)라고 부른다. 정상적인 무슬림이라면 하루에 5회씩(시아파는 3회씩)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Mecca)를 향하여 방향을 맞추고 꾸란 1(개경장: Surat al Fatiha)을 외우면서 율동하듯이 정해진 동작을 취하는 것이다. 1장 전체는 7개의 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1절부터 7절까지 외우면서 정해진 동작을 마치는 것을 1 라카(Rakat)라고 한다.

첫 번째 기도는 새벽기도(Fajr)라고 하며 2번의 라카(Rakat)를 반복한다.

두 번째 기도는 정오기도(Dhuhr)라고 하며 4번의 라카를 반복한다.

세 번째 기도는 오후기도(Asr)라고 하며 4번의 라카를 반복한다.

네 번째 기도는 일몰기도(Maghrib)라고 하며 3번의 라카를 반복한다.

다섯 번째 기도는 밤 기도(Isha)라고 하며 4번의 라카를 반복한다.

 

그러니까 새벽기도부터 밤기도까지 17 라카를 반복하며 꾸란 1(개경장) 전체를 매일 17회 외우는 것이다. 이것은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며, 추가로 더 기도하고 싶은 사람은 몇 라카를 더 추가할 수 있도록 허락(할랄)되었다. 또한 기도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세정예식(우두)을 한다. 더러운 것을 만졌든지 방귀를 뀌었든지 대소변을 보았든지 어쨌든 더러워진 몸을 정결케 하는 것이다. 이 세정예식도 순서대로 손, , , 얼굴, , 머리, , 발을 순서대로 씻되 머리, 귀는 1회씩 씻고 나머지는 3회씩 씻는다. 만일 성관계를 했다든지 피를 만졌든지 시체를 만졌다면 목욕(꾸슬)을 해야 한다. 이 때는 반드시 욕실에 오른발부터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그 기도의 내용이 무엇일까?

아마 한국 무슬림들에게 물어보면 정확하게 그 의미를 알고 기도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7세기 문어체 아랍어로 외워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이슬람교중앙회에서 발간한 <예배입문>이라는 소책자가 있는데 일반 무슬림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설명하는 책이다. 거기에는 기도할 내용을 아랍어로 써 놓고 그 아랍어를 읽을 때 나는 소리(발음)를 한글로 표기해 놓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아랍어가 천상의 언어이고 알라는 아랍어로 기도해야만 이해한다고 한다. 아랍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번역한 꾸란은 꾸란이 아니라고 하니 아랍어로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랍어에는 있는데 한글에는 없는 발음이 있다. 예를 들면 F, Z, KH, GH, DH 등의 발음은 한국어에는 없는 소리이고 따라서 한글 자음으로는 표시를 할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아무리 비슷하게 흉내를 내도 우리말에는 그런 소리가 없기 때문에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나 완전히 다른 뜻이 되고 마는 경우가 생긴다.

예를 들면 나의 어머니는 살아계십니다는 말을 이란어로 번역하면 “Madaram zendeh ast”가 된다. 이것을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표기하면 머다람 젠데 아스트라고 쓸 수밖에 없다. “Z”자음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이 없기 때문에 이를 비슷한 소리의 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머다람 젠데 아스트라고 읽으면 나의 어머니는 창녀입니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이렇듯 자음 하나를 잘못 발음해도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데 아랍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표기해 놓고 무조건 외우라고 하는 것은 너무 황당한 일이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이 기도의 내용이다. 세상의 무슬림들이 하루에 다섯 번씩 이런 내용의 기도를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섬뜩해질 것이다.

기도는 자신의 소원을 신에게 고하는 소통의 통로인데 무슬림들은 그 기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외우고 있는 것이다. 그 일곱 절의 내용 중 나머지는 모두 고백과 찬양의 내용이고 6절 한 절만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 하소서라는 간구의 내용이다. 그리고 7절은 그 옳은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7절의 내용은 그 길은 당신의 은총을 받은 길이며 알라의 진노를 받은 지들과 방황하는 자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알라의 진노를 받은 자들이 누구며 방황하는 자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꾸란의 주석 중의 주석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이븐 카티르(Ibn Kathir)의 주석을 보면 6대 하디스에 꼽히는 티르미디(Tirmidhi)의 하디스를 인용하면서 “Those who have earned the anger are the Jews and those who are led astray are the Christians.”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알라의 진노를 받은 자들이란 유대인들이며 방황하는 자들이란 기독교인들을 말한다는 것이다.

 

비록 평범한 무슬림이나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들일지라도 하루에 17회씩 유대인들이란 알라의 진노를 받은 자들이고 기독교인들은 방황하는 자들이라고 고백하면서 이들이 가지 않는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즉 무슬림들의 기도는 사회 통합은커녕 비무슬림들과는 담을 쌓는, 사회 갈등과 마찰을 유발시키는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알라의 진노를 받은 자들이나 방황하는 자들은 그저 단순히 신앙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꾸란의 수많은 구절들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실제적인 적대감과 저주를 나타내고 있다.

 

마리아의 아들 메시야는 신이라고 하는 자들은 이미 믿지 않는 자들이니라.(꾸란5:72, 꾸란5:17))

 

알라는 세분 중의 한 분이시다 라고 하는 자들은 이미 믿지 않는 자들이니라.’(꾸란5:73).

 

알라에게 아들이 있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 때문에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갈라지고 산들이 무너지느니라.’(꾸란19:88-91)

 

여기서 믿지 않는 자’(아랍어로 카피르)"이슬람을 믿지 않는 불신자"를 말하지만 배교자나 죽여야 하는 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도 이슬람권에서 기독교인들의 집이나 교회를 파괴하고 불태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가르침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 간 나이지리아에서는 보코하람이라는 이슬람 지하드 단체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매주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교회를 파괴하며, 매년 수백 명씩 살해하였다.

 

유대인들은 가장 사악한 피조물들이며 영원토록 불지옥에서 고통을 당할 것이라’(꾸란98:6)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삼는 자들은 불의한 자들이다.’(꾸란5:51)

 

무함마드는 세상의 종말과 죽은자의 부활은 모든 유대인을 죽이기 전에는 오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은 너무나 심해서 바위나 나무조차도 유대인을 미워할 정도이며, 만일 유대인이 숨으면 바위나 나무가 무슬림에게 유대인이 여기 있다고 알려주어 와서 죽이게 할 것이라고 했다. (Sahih Muslim Book 41 Number 6985, Sahih al Bukhari Volume 4 Book 52 Number 177 등 다수)

 

이처럼 무슬림들이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저주하는 기도는 기도로 그치지 않고 그들과 장벽을 쌓게 해왔을 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수많은 공격과 살해와 전쟁으로 나타났다.

 

그런데도 이런 기도를 하라고 기독교인들이 돈을 모아서 모스크를 지어주는 것이 옳은 일인가? 혹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이슬람 기도처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가? 기독교 재단이 세운 대학에서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저주하는 기도를 하라고 장려하는 일이 과연 착한 일인지를 분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가 타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선행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종교행위를 돕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1,2,3계명을 범하는 범죄행위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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