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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떠나라, 너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니다"

무슬림사랑 2017-03-13 (월) 23:26 1년전 1099


"떠나라. 너는 이 나라 국민이 아니다"

2016년 12월 어느 날, 집에 들이닥친 미얀마 군인들이 누루 베검(Nur Begum, 25)씨를 구타하며 했던 말이다. 아버지는 그녀가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당했다. 이유도 없었다. 늙어서 괜찮을 거라는 아버지는 힘없이 밖으로 끌려나가 한마디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살해당했다. 

사춘기인 남동생(15)도 체포되어 끌려갔다. 무슨 혐의로 어디에 구금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 뒤로 행방이 묘연하다. 아버지와 남동생은 모두 미얀마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인데 이렇게 억울하게 떠나야 했다. "떠나라, 너는 이 나라 국민 아니다." 군인들에게 누루 베검과 그녀의 가족은 그들이 지켜야 할 미얀마의 국민이 아니었다. 그저 벵갈 출신의 불법체류자일 뿐이다.

로힝야 논쟁 - 미얀마 소수민족인가?

누루 베검씨는 로힝야(Rohingya)이다. 지구상에 2백 2십만 명 이상이 사는 로항야족은 미얀마에 130만 명, 사우디아라비아에 40만, 방글라데시에 3~50만, 그리고 파키스탄에 20만가량이 거주한다.

미얀마 로힝야족은 주로 방글라데시 접경지역인 라카인주 북부에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기 훨씬 전부터 지금의 미얀마 라카인주 북부와 방글라데시 접경지역 벵갈만 인근에 동일한 문화권을 형성하며 살아온 민족이다. 다만 영국으로부터 독립과 동시에 국경이 인위적으로 그어지면서 일부는 방글라데시로, 다른 일부는 미얀마로 편입되었다. 벵갈어를 쓰는 무슬림이지만, 미얀마 내의 로힝야족은 스스로 미얀마의 소수민족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미얀마 군부는 로힝야족을 미얀마 원주민 출신 소수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면 이들은 1948년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 거대 토목공사의 인력으로 투입한 이주노동자로, 독립하면서 자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라카인주에 눌러앉은 불법 이주자라는 것이다. 

즉, 미얀마 시민권자가 아니라는 논리이다. 실제로 1982년 미얀마의 네윈 정부는 시민권법 개정을 통해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이들은 무국적 상태이다. 실제 아디(ADI)가 인터뷰한 48명 피해자 모두는 미얀마 시민권이 없다고 증언했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 받는 민족"
미얀마 정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 역사는 길다. 로힝야족은 영국 식민지배 당시에 불교도인 버마족이 주도하는 독립운동에 동참하지 않고 자신들의 자치독립에 유리한 행보를 걸었다. 다른 소수민족과 유사하게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에도 이들의 무장투쟁도 지속되었다. 

이에 대해 버마족 중심의 군부와 지배층은 이를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로힝야족 전체를 박해했다. 또 라카인족과의 분쟁을 방관하거나 이를 빌미로 로힝야족을 탄압했다. 1978년, 미얀마 정부는 무슬림 반군토벌을 명분으로 내건 킹드래곤 작전으로 로힝야족 20만 명을 방글라데시로 몰아냈고, 1991년에는 25만 명을 몰아냈다. 2012년에는 라카인 소수민족과의 충돌로 최소 로힝야족 200여 명이 사망하고 10만여 명이 격리되었다. 

특히 이 사건은 일부 로힝야 청년이 불교도 여성을 강간한 사건으로 촉발되어 라카인 불교도들이 로힝야족을 보복 공격하면서 격화되었다. 미얀마 전역에 반무슬림 정서의 확산은 물론, 불교도 극우주의 세력 주도의 혐오 발언이 심각한 수준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

로힝야족에 대한 억압은 사회 구조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로힝야족은 국적을 받을 수 없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다. 인근 지역 방문도 허가를 받거나, 통행료 등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결혼은 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다. 직업을 구하는데 제약이 있고, 공직에는 나갈 수 조차 없다. 

이러한 억압 속에서 2016년 10월 미얀마군의 로힝야족 토벌작전이 발생하기 전까지 수천 명이 보트피플이 되어 인근 해역을 떠돌았다. 군부는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불교도 버마족의 이익과 직결된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로힝야족 무슬림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이 됐다.

미얀마군에 의한 로힝야족 학살 사건의 전개

2016년 10월 9일, 칼, 새총, 30여 개의 소총 등으로 무장한 로힝야족 수백 명이 라카인주 북부 마웅도우(Maungdaw)에 위치한 경찰서 1곳과 경찰초소 2곳을 습격했다. 무기고의 총기 62정과 탄약 1만 발이 이들 손에 넘어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교전으로 미얀마 경찰 9명이 사망했다. 

국제 위기감시기구인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ICG)'에 따르면, 습격을 주도한 소수의 핵심세력은 아프가니스탄이나 파키스탄 등지에서 군사훈련을 받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라고 한다. 방글라데시를 통해 잠입했으며, 지역민들의 어느 정도의 지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라카인 민족과의 충돌 사태를 겪으며 절망에 빠진 지역민들이 동참한 것이다. 이들은 이슬람 성전(지하드)을 표방하지 않고 로힝야족의 박해를 종식하는 것을 가시적 목표로 삼았다. 

미얀마 군부는 습격사건 이후 본격적인 토벌작전에 나섰다. 관련자 색출, 무기회수, 조력자 체포 등을 위해 마웅도우 지역을 완전봉쇄 했다. 군부의 오랜 전략으로 무장세력의 식량, 자금, 정보, 징집을 차단하려는 것이다. 작전은 군대와 국경경비대(BGP)의 공동으로 수행됐고 300~2000여 명 단위의 군인들이 소규모로 나뉘어 마을 전체를 수색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작전은 자정, 새벽, 점심 등 시간에 무관하게 2-3일에 한 번씩 또는 많게는 하루에 4번까지도 진행됐다.

로힝야족을 집단처벌하고 방글라데시로 쫓아내려는 작전
그러나 토벌작전의 실상은 무장세력의 색출을 넘어, 로힝야족 거주민들을 잠재적 가담자 또는 지지세력으로 간주해 집단으로 처벌하는 것이었다. 나아가 이들을 거주지에서 내쫓고 방글라데시로 월경하도록 의도적으로 억압했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에게 무작위로 발포하거나, 근거리 조준 사격하여 사람들을 죽였다. 심지어 헬리콥터가 동원되어 공중에서 자동화기를 발포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뿐만 아니라, 소총 개머리판으로 구타하거나 검으로 찔러 죽이거나 산채로 집안에 묶어두고 방화하여 죽이기도 했다. 

청장년 남성은 닥치는 데로 잡아 구타하고 아무런 이유 없이 체포해 어디론가 끌고 갔다. 이들은 대부분 행방불명 됐고, 귀가한 사람들 중 일부는 구타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거나 심각한 내외상으로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

약자는 폭력의 가장 큰 희생양이다

군인들은 유아를 우물에 던져 죽이거나, 땅에 내리쳐 죽이기도 했고, 부모가 보는 앞에서 검으로 살해했다. 수많은 여성들이 집단강간의 희생자가 됐다. 군인들은 일부 여성들을 가두고 집단강간 후 살해하거나 심각한 외상에 이르게 했다. 

강간 사례는 거의 모든 마을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났다. 또 여성들을 학교운동장에 모아놓고 강제적인 몸수색을 통해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하거나 나체로 특정 자세를 취하게 한 후 성기를 촬영하는 등의 만행을 일삼기도 했다.

로힝야족 무슬림들이 사는 주거지는 불태워 없어지거나 파괴되었고, 군인들은 로힝야족의 가축, 식량, 돈, 금, 장신구 등의 재산을 약탈했다. 마을 거주자들은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닥치면 산속으로 도주했다가 군인들이 물러가면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식으로 생존했다. 

다른 마을로 피신하기도 했으나 군인들의 만행에 자유로운 곳은 없었다. 결국 7만3천여 명이 자신의 삶의 터전을 버리고 맨몸으로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됐다. 여전히 많은 로힝야족 무슬림들이 마웅도우에 머물며 힘겹게 생존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보호와 인도적 지원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출처: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05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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