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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국내] 크리슬람과 내부자 운동 이해 2

이슬람전문가 2017-02-05 (일) 18:46 2년전 2606

크리슬람(Chrislam)內部者運動 理解

 

이승주 선교사(육군대령전역, 전 탄자니아 선교사, 한장총 한교연 이슬람선교훈련원 2기 졸업)

 

. 내부자 운동에 대한 국내적 상황

우리나라에서는 2013WCC(세계교회협의회)의 부산대회를 계기로 더욱 표면화되면서, NCCK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기독교계의 이슬람의 견제활동을 비판하면서 종교 간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그 당위성을 찾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에서는 신학생과 부제 그리고 신부와 수녀들은 서울 한남동 이슬람 중앙성원을 방문하여 이슬람의 교리와 문화를 배우고 있으며, 불교와는 강단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20148월 프란체스코 로마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종교 간의 대화를 앞세운 크리슬람 운동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17]

 

 

4.내부자 운동 자세히 들여다 보기

 

. 주요 관점

 

(1) 하나님과 알라에 대하여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가 같은 신이라는 입장이다. 하나님은 범 우주론적 존재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잘 모를 수 밖에 없으며 때문에 타 종교를 믿는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의 구원은 임한다고 주장한다. 무슬림은 이스마엘의 후예이며 이스마엘과 그 후손에게도 하나님의 보통은혜가 임한다는 주장을 편다.

 

(2) 예수의 神性三位一體에 대한 모호한 입장

 

무슬림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예수의 신성, 삼위일체론을 성경을 벗어난 신학적 교리일 뿐 이라고 말하며 누구든지 단지 알마시의 제자 즉 이사의 제자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이슬람권 선교와 전도의 목적을 위해 삼위일체이신 예수가 생명의 주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르지 않고 예수를 메시아혹은 이슬람식으로 이사 알-마시로 부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성경 무오설을 왜곡시키거나 부인하기도 한다.

 

(3) 성경번역의 문제

 

내부자운동가들은 성경을 이슬람화한다. 의도적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빼고 메시아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번역한다. 이들은 모스크에서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이라는 C5개념을 말하기 위해 무슬림 독자를 위한 조화형 성경을 활용한다. 이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거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번역을 피했다.

(4) 내부자 운동의 성경적 근거

 

내부자 운동자들은 복음의 實用主義 노선을 선호하며, 따라서 성경引用은 필요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사용한다. 발람, 요나, 나아만, 예루살렘 공의회의 이방인 무할례 결정 등을 내부자 운동의 성경적 예로 사용한다. 이들은 내부자 운동 가운데 하나님의 영이 함께 인도한다고 확신한다. 민수기22:20-24에서 이방인 선지자 발람이 점을 쳐서 하나님과 교통하였다고 하며, 열왕기하5장에서는 나아만이 異邦종교를 믿는자임에도 엘리사가 치유하였다고 한다. 내부자운동을 주장하는 자들은 이를 C5신자와 연관시켜 해석한다. 요나서의 異邦선원이나 요한복음 4장의 사마리아 사람들이 모두 이방인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구하였으며, 요한복음 17장을 통해 하나님을 마음에 모심으로 이방인들에게도 장막으로 자신을 계시하였다고 말한다. 사도행전 15장을 통해서는 예수를 믿는 무슬림에 대한 성령의 인도 즉 성육신을 강조한다. 사도행전 17장에서 사도바울이 아테네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모르면서도 하나님을 예배한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였다고 말한다. 바울이 내부자운동가였음을 말하는 구절로 고린도전서 9:19-22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 같이 된 것은 유대인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니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를 인용한다. 이때 사도바울은 유대인 속에서는 유대인으로, 헬라인 가운데는 헬라인으로 거했다는 것이다. 또한 바울이 유대인의 후손인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했으나 이방인이었던 디도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은 것도 그가 내부자 운동가였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5) 하나님 나라(왕국) 模型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으며, 십자가의 교회는 예수님이 중재하신 왕국의 중심이고, 따라서 모든 다른 종교는 어둠의 나라에 속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부자운동가들의 하나님 나라 모습은 <그림1> [iii] 과 같이 다르다. 이들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기독교를 완전히 포함하는 것이 아니다. FI같은 부분을 공유한다. 성경과 일치하는 것도 하나님 나라이지 교회는 아닌 것으로 그려진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뿐 반드시 기독교라는 제도적 장치에 동의하거나 기독교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이 세계적인 그리스도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내부자 운동측 하나님 나라 모형에는 어둠의 왕국이 없다. 이들이 말하는 기독교모형 속에는 기독교 부분이 있는데 그곳에 십자가는 있으되 교회는 없다. 또한 기독교와 타종교 특히 이슬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올바른 길임을 암시하고 있다. 리지웨이는 구체적인 조직과 구조가 없이 굳이 종교라는 틀을 갖추지 않아도 복음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즉 교회대신 천국이라는 패러다임만 있으면 된다고 믿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내부자운동은 무슬림에게 쉽게 접근하기 위해 기독교리의 핵심중 하나인 교회의 절대적 존재이유를 부인한다.

 

 

(6) 이슬람의 律禮행위를 文化로 수용

 

이들은 예수님 조차도 유대에 속한 내부자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유대인 문화권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유대인이자 이스라엘 백성으로 유대문화와 종교 가운데 머물러 계심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 속한 다른 사람들처럼 사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종교적 생활, 역사 및 행위를 포용하면서도 복음을 타협하거나 혼합주의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은 무슬림의 율례행위를 문화적 요소로 인정하고 그대로 받아드리되 이사를 믿고 예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독교문화와 연관된 기독교의 제도적 형태에 꼭 얽매일 필요가 없으며, 무슬림 중에는 이슬람의 의식은 지키지만 개인적으로 이슬람교의 교리에는 얽매이지 않을 수 있기에 자신들의 공동체에 그대로 있으면서도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 있다고 한다. 무슬림들이 소속된 공동체에서 떠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과 같으므로 그 공동체 안에 그대로 거하면서 예수를 믿도록 하되, 이렇게 해서 복음이 이웃의 사회적 네트워크로 흘러 들어가면 내부자 운동은 정착되고 결과적으로 그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포함하지만 교회보다 크며 하나님이 우주에서 통치와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기에 성경적 回心이란 마음과 생각이 바뀌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종교적 소속이 바뀔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자미 윈십(Jamie Winship)은 무슬림들이 행하는 기도와 율법은 버릴 것이 없으며 예배의 행위로 드려질 수 있다고 하며, 꾸란은 복음을 가리켜주는 지침이라 말한다. 메시아적 무슬림들은 예수를 마음으로 믿으며 신약성경을 들고 모스크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슬람의 다섯 기둥은 1세기 유대교와 유사하며, 크리스쳔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의미하기에 종교적 소속보다는 마음 속의 신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정결하지 않은 크리스쳔으로 보다는 예수를 믿는 정결한 무슬림으로 살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교회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신자들로 구성되며, 참 교회는 내적이고 영적이다. 때문에 예수를 믿는 자들은 타협하지 않고도 두 종교의 신분을 유지하며 교회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18]

 

 

(7) 교회 개척 : 선교와 전도

 

내부자 운동에서는 신자를 상황화 모델안에서 C1 C6로 구분 짓고, 현실 세계에서 C1부터 C6까지의 상황이 공존한다고 말한다. 히긴스는 기독교의 배타성을 비판하며 다른 종교를 통해서도 구원이 있다는 포용주의를 주장하고 다원주의 관점에서 세상의 모든 종교는 다 하나님께 통한다고 말한다. 내부자운동가들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연속성과 차별성에 대한 독특한 주장을 펴기도 한다.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계시는 꾸란의 사상을 다 포함하며 예수는 이슬람에게도 적용된다는 연속성의 논리를 펼친다. 이들은 이슬람적 세계관으로 기독교를 바라본다. 죤 트라비스는 예수가 새로운 종교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천국을 만들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한다. 때문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반드시 그 전에 믿었던 종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택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이슬람의 신앙원리와 전통중에는 기독교와 일치하는 것도 있다고 주장한다. 내부자운동자들이 말하는 낙타전도법은 연옥사상에서 비롯하였는데, 평화의 사람들이라 불리는 개방적인 무슬림들은 준비된 전도의 대상으로 스스로 다리를 건널 수는 있지만 성경에 대한 두려움이나 증오때문에 문화의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있기에 이들을 전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 낙타전도법의 개념이다. C4는 전통적인 C1-C3로 부터 C5사이에서 중간자적 역할을 하면서 내부자운동과 전통적 복음주의 방법의 다리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한편 내부자 운동은 교회개척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교회 개척은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교회 개척을 말하지 않는다. 마크 하알란(Mark Harlan)前方개척선교를 주장하며 내부자의 교회 개척은 새로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커뮤니티를 변혁(transform) 시키는 것이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내부자 운동은 기존의 무슬림 공동체와는 별개로 교회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보다는 기존의 무슬림 공동체를 변화시켜 그 공동체가 예수를 따르는 MBB가 중심이 된 이슬람 문화 지향적인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19]

 

 

. 내부자 운동이 表出하는 심각한 문제들

 

내부자 운동이 갖고 있는 문제들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제기가 되어왔다. 여기서는 일반 신자들이 이해하는 수준에서 핵심적인 문제들만 논하고자 한다.

 

(1) 내부자운동의 상황화

선교현장에서 상황화란 언제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상황화의 범위가 어디 까지인가. 선교와 전도를 목적으로 성경을 잘못 번역하고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지 않으며, 이슬람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성경을 변질시키면서 까지 상황화를 적용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상황화라는 개념에 숨어서 오히려 이슬람교리에 타협하고 굴복해야 한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무기력한 신일 뿐이며, 살아계신 절대자가 될 수 없다. 성경은 무오하다


그러나 내부자운동가들은 성경이 무오하지 않다고 까지 주장하며 가장 중요한 교리들을 감추거나 지워버리려 한다. 2천 여년을 변질되지 않고 전해진 성경을 변질시키고 있다. 내부자운동이 빠질 수 있는 陷穽은 바로 혼합주의이다. 이들은 이러한 함정에 대한 경고까지 무시하면서 담을 헐고 혼합주의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역사 속에 많은 자들이 혼합주의에 빠진 것을 본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 혼합주의를 불사르고 다시 정결케 하시지만 말이다. 혼합주의로 이끄는 상황화는 인본주의적 소산일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을 이끄는 형태로 작동되기 때문이다. 꾸란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성경은 절대로 변할 수 없다.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신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

 

알라와 하나님은 동일한 신이며, 이슬람의 주장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스마엘의 후예인 자신들에게 마지막 계시로 꾸란을 주셨다고 말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하나님은 야훼라는 이름으로 나타나며,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꾸란에는 알라의 이름을 99가지로 표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에서는 절대로 알라를 야훼라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그렇게 부르지도 않는다.

 

그리스도의 영은 使徒 요한의 시대에도 이미 등장하고 있다. 요한12:18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고 하였으며, 요한14: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고 하고 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4:1에서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을 따르리라 하셨으니라고 경고한다. 이슬람에서는 삼위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신성, 십자가와 부활을 부정하며 예수님을 선지자 중에 한 사람으로 인정할 뿐이다. 때문에 그들에게 있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도 그리스도도 아니다. 요한12:22, 4:3은 예수가 그리스도임과 하나님의 아들임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 하였다. 내부자운동가들은 이슬람이 말하는 것과 동일하게 성경 어느 곳에서도 삼위일체를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번역한 이슬람 친화적 성경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부분을 지워버리고 메시아혹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대체하였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도, 예수님의 신성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하심도 부인하면서 C4-C6의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들로 인도하겠다는 것은 심각한 모순일 뿐이며 異端的 발상이다. David Dollins크리슬람은 단연코 적그리스도의 (A Spirit of Antichrist)이며, 교회에서 이슬람을 받아드리는 것은 세속의 영에게 항복하는 것이고 사탄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0]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屬性과 꾸란에 등장하는 알라의 속성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의 속성은 진리, 생명, 사랑, 평화, 평등, 겸손, 용서, 화해, 구원, 자유 등인데 반하여 알라의 속성은 거짓(타끼야), 죽음, 테러, 공포, 정복, 지하드, 구원의 불확실, 쟁취, 속박, 남성과 여성의 차별화 등으로 근원적인 속성이 다르다.

 

이슬람이 하나님의 마지막 계시라고 하는 꾸란은 성경과 너무 다르거나 상반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이라면 성경과 꾸란은 一貫性을 유지해야 하며, 신으로서의 속성이 一致해야 하고, 핵심적인 교리가 서로 相反되어서는 안된다. 때문에 만약 하나님과 알라가 같은 신이라면 우리는 성경과 꾸란의 상반되는 교리중에 어떤 것을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내부자운동가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알라를 동일한 신으로 섬겨야 한다는 주장이 異端的 發想일 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꾸란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성경을 표절하였기에 등장하는 시기가 뒤죽 박죽이다. 예수님을 미리암이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 한 예이다. 꾸란의 앞과 뒤가 그 내용에 일관성이 없이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많다. 때문에 원천적으로 이슬람은 꾸란에 대한 의문과 질문을 싫어한다. 일부 교리는 취소되고 대체되었다. 꾸란에 나오지 않는 내용은 인간일 뿐인 모하메드의 일거수 일투족 행동을 기록한 하디스로 보완한다.

 

(3) 오늘날 선교사의 무덤인 무슬림선교에서 내부자운동은 효과적 전도방법인가?

 

만일 성경을 완전히 알고 이해한 훈련된 내부자라면 혹시 그 방법이 효과적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모스크에서 누구를 향해서 예배하며 신앙고백 드리는가를 생각하면 정말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더욱이 C1 C6로 분류하는데 따른 성경적 근거도 없다. 전도는 개종자들을 하나님의 전에 이끌고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내부자운동가들은 기존의 기독교체계를 서구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으로 평가절하하며 교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슬람의 모든 율례를 문화로 치부해 버리고 있다. 그들은 모든 종교에 하나님의 救援이 있다는 多元主義적인 접근을 한다. C4 C6신자가 크리스천이라면 우리는 앞으로 성경을 들고 법당에서, 모스크에서, 힌두교 사원에서, 무당집에서 예배드려도 無妨하다.

 

(4) 이슬람의 율례는 과연 문화로만 인식할 수 있는가?

 

우드베리(Woodberry J. Dudley)가 주장한 것 처럼 이슬람의 다섯 기둥은 어쩌면 1세기의 유대인 율례와 類似할 수 있으며 그 모형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방인에게 할례를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한 격론 후에 할례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내린 결정은 할례를 유대인의 문화로 받아드린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슬람의 종교적 율례 모두를 문화적 요소로 받아드린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알라에 대한 신앙고백이 문화라고 하면 이는 어불성설이다. 이슬람은 형식의 종교이다. 형식을 빼면 이슬람은 종교가 아니며, 종교적 형식이 문화라면 이슬람 자체가 종교가 아니라 문화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우리의 복음서와 바울 서신은 형식적 율법 행위에 대하여 분명히 경고하고 있으며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선한 행위의 기준은 각자의 판단일 뿐이다. 믿음이 없는 선한 행위는 자칫 위선일 수도 있으며, 구원이라는 보상을 목적으로 한 의도적 행위일 수 있다. 기독교는 절대로 종교적 행위를 문화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5) 其他

 

C5 즉 메시아적 무슬림들에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사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임재하는지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이것은 전도자들의 판단일 뿐이다. 이들에게 나타난 임재가 알라(사탄)의 것인지 하나님의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다. 이 시대에 적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이슬람에 대하여 그들이 예수를 영접하고 나타나는 일부 현상을 과연 하나님의 임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이 세상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과 사탄의 迷惑의 영이 존재한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암송하고 기억한다. 사도신경에 반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부자운동가들이 말하는 이 엄청난 혼합과 이탈을 우리는 무엇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5. 對案을 찾아서

 

성경을 변질시키지 않고도, 이슬람과 적절히 타협하지도 않고도, 굳이 C4-C6와 같이 모스크 안에 있는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들을 찾아 나서지 않고도 하나님의 말씀이 강하게 臨在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우리는 선교현장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교와 전도는 하나님이 하신다. 우리는 도구일 뿐 인간인 내가 선교하는 것이 아니다. 신명기 5:7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지니라”, 이사야 40:8 “풀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우리의 하나님은 嫉妬의 하나님이시다. 성경 곳곳에 하나님을 떠나 우상과 이방신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에 하나님은 혹독한 징계를 내리셨으며 이방인들과의 혼인까지도 싫어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혼합주의도 다원주의도 원치 않으신다.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원하는 純潔한 백성으로 돌아오도록 만드시고야 만다.

 

내부자운동은 이슬람을 비롯한 타 종교의 율례를 모두 문화로 치부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슬람의 율례와 예배처소 까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면서 예수를 따르는 무슬림으로 세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상황화 전략이 이러한 내부자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다. 크리슬람들은 교회에서 성경도 읽고 꾸란도 읽는다. 이슬람 모스크 안에서 신분을 숨긴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로 살아간다.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분노를 유발할 뿐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순결하고 성결된 자들을 찾으신다.

 

하나님은 중동 이슬람 근본주의 지역 안에서도 일하신다. 무수한 죄없는 백성들이 이유도 모르고 죽어가는 시리아 내전 가운데에서도 시리아 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그곳에 주님은 찾아가시며, 터어키 정부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탄압을 받는 쿠르드족(Kurd) 가운데도 주님은 임하신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일하신다. 키르키즈스탄은 무슬림이 85%를 넘는 이슬람 주도국가이다. 선교사라는 신분으로 비자를 받을 수도 없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꾼들이 현지인 가정교회 지도자들을 세우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보았다. 아직은 작지만 성령의 바람이 서서히 불고 있다.

 

탄자니아 키감보니(Kigamboni)에서는 이곳 민속 무슬림들이 태생적으로 부모에 대한 효심이 있음을 발견하고 노인초청 敬老잔치를 베풀면서 무슬림 지역사회가 교회와 선교사를 보호하는 모습을 보았다. 국내에 들어와있는 무슬림들의 수가 공식적으로 17만 여명에 달한다. 이들 중에 상당 수가 移住노동자들이다. 곳곳에 이들을 섬기는 교회가 있으며 특히 이란인 교회, 터키인 교회 등 나라별 무슬림들을 헌신적으로 섬기는 선교사들도 있다. 매일 매일 하나님 말씀의 씨앗이 그들 가운데 뿌리내리고 있음을 본다. 선교사역에 있어 17억 무슬림 중 대다수가 민속 무슬림이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다. 중동 이슬람 근본주의 지역내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끝도 보이지 않는 분쟁은 이슬람에 대한 피로증과 회의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민속 무슬림이거나 소위 세속화된 무슬림들은 꾸란을 암기할 뿐 그 진정한 의미를 알지도 못하며 그저 습관적으로 무슬림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들은 개종할 경우 자신들의 거처인 움마 공동체로부터 당할 고립과 핍박을 무서워할 따름이며 알라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실재하는지는 의문이다. 이처럼 무슬림들이 거하는 곳곳에 선교를 위한 틈새가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전도해야 할까? 우리는 이슬람을 警戒하되 무슬림을 사랑하라는 말에 익숙하다. 어떻게 경계하고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먼저 이슬람을 경계하려면 이슬람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늘 승리할 수 있다. 이슬람을 알아야 이슬람 공포(Islam phobia)를 지워버릴 수 있다. 이들의 실체와 위장된 포교전략을 알아야 이땅에 확산되는 이슬람을 막아낼 수 있다. 또한 무슬림을 사랑하려면 역시 이슬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어떤 사탄의 영에 사로잡혔는지 알아야 위해서 기도할 수 있다. 한 영혼구원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무슬림들과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아가며,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앙의 본을 보이고, 그들의 현재의 필요와 갈급함을 채워주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사랑의 마음이 필요하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올 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주고 읽게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하나님은 이 가운데 임하신다. 무슬림으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지니고 있던 생각과 가치관과 세계관을 변화시키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물질적 현재의 필요만 채워주는 선교는 그들의 겉모습만 변화시킬 뿐이며 하나님이 아닌 나에게 依存하는 자로 만들 뿐이다. 분명한 것은 내 자신이 하나님의 신실한 도구로서 온전히 주님께 의지하고 나갈 때 주님은 우리에게 智慧를 허락하시며 직접 일하신다는 사실이다.

 

 

6. 나오는 말

 

고린도후서 6:17-7:1너희는 믿지 않는 자의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그런 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라고 말씀하신다.

 

오늘날 상황화 전략과 내부자운동은 꽉 막혀있던 이슬람선교에 萬病通治藥 처럼 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슬람권 선교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달달한 사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내부자운동을 알리는 사람들은 내부자운동이 이미 오래 전 미션 퍼스펙티브에 소개되었으며, 검증된 상황화 이론으로 뒷받침된다고 강조한다. 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선교이론에 미혹되어, 무비판적으로 내부자운동의 훈련과정에 동참하고 있으며 효과적인 선교방법이라고 박수 갈채를 보낸다타 종교의 율례를 문화라고 하면서 성경이 변질됨에 批判意識도 없고 抵抗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선교의 많은 열매를 원하시지 않으며
, 속히 전도의 열매를 얻기 원하시지 않으시고, 인본주의적 선교방식을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보내신 아들의 이름이 망령되이 여김을 원하지 않으시며, 이미 주셨던 말씀과 계시가 변질되는 것을 너무나 싫어 하신다. 결국 세상의 主管者이신 그분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이루어 나가실 것이다. 이슬람권 선교는 그들의 율법에 굴복과 타협을 하지 않으면서도 접근 가능한 틈새와 그 對案이 분명히 존재한다. 선교를 내가 하지 않고 주님께 의지할 때 지혜도 허락하시며 또한 주님이 주권적으로 개입하신다.

 

우리는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교회로 출석할 때 그 교회가 어떤 곳인지 꼼꼼히 살펴본다. 특히 이단인지 여부는 반드시 확인해 보아야 할 요소이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잘못된 훈련과정들이 있다. 선교라는 이름으로 혼합주의로 포장된 선교사들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다. 천천히 가지만 그리고 어렵지만 바른 길, 옳은 길을 쫓아야 한다. 자신도 모르게 영적 어둠의 길로 들어서는 우둔함을 버리고 명확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크리슬람, 誤導된 상황화 전략에 기반한 내부자운동에 대하여 눈을 크게 뜨고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 보아야 한다. 좁지만 험한 길을 걸어가며 오직 주님께 의지할 때 주님은 분명히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크리슬람에 대하여는 이슬람에서도 매우 嫌惡한다. 이 글을 통하여 크리슬람, 내부자운동과 상황화 전략에대하여 다소나마 그 실체를 이해하고 우리가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이들을 대하며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바의 이슬람 선교와 전도가 펼쳐지기를 기도한다.

 

 

이 글을 게재한 이승주선교사는 197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30여 년의 군 복무를 대령으로 전역한 후에 탄자니아 선교사(탄자니아 연합대학 교수)로 사역하다가 현재는 PAUA(범 아시아 아프리카 선교대학 협의회)에서 기획 및 전략본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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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상목. 기독교 본질이 왜곡되고 변질크리슬람 논란. 국민일보. 2015.4.25

[2] 문병길, 크리슬람운동은 背道의 길, 뉴스파워, 2014.7.29

[3] 신상목, 기독교 본질이 왜곡되고 변질크리슬람 논란, 국민일보, 2015.4.25

[4] 문병길, 크리슬람운동은 背道의 길, 뉴스파워, 2014.7.29

[5] David Dollins, ‘Chrislam’ A Spirit of Antichrist, Christian Post, 2011.7.20

[6] 김요한, 동남아시아 무슬림 사역현황과 앞으로의 사역 전망, pp.1-2

[7] Ibis.pp.2-3.

[8] IFMAInternation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으로 초교파 해외 선교협의회를 의미하며, 1917년 미국 프린스턴에서 결성. EFMAThe Evangelic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으로 복음주의 세계 선교협의회를 의미하고 1945년 창설. EMAThe Evangelical Missionary Association으로 복음주의 선교사협의회를 의미하며 1887년 창설.

[9] 신운탁, 상황화를 통한 이슬람선교 전략연구 : 내부자 운동과C5 전략을 중심으로, 장로회신학대학 세계선교대학원 석사논문, p.50, 2014

[10] 김요한, 이슬람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내부자 운동 소고, pp.2-3

[11] 강승빈, 내부자운동(Insiders Movements)에 대한 비평적 평가, 2016

[12] 홍기영, 통전적 선교, 물가에 심은 나무, p.8, 2008

[13] 신운탁, 상황화를 통한 이슬람선교 전략연구 : 내부자 운동과C5 전략을 중심으로, 장로회신학대학 세계선교대학원 석사논문, p.33, 2014

[14] 강승빈, 내부자운동(Insiders Movements)에 대한 비평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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