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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국내] [사우디 ‘왕좌의 게임’과 카타르 사태, 중동 패권 경쟁 관전법] 시아파·이슬람 민주주의 세력에 칼 겨누다

무슬림사랑 2017-07-03 (월) 15:20 2개월전 344

사우디 아라비아의 살만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82) 국왕이 6월 21일 장남인 무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31) 제2 왕위계승권자 겸 국방장관을 제1 왕위계승권자로 책봉했다. 이날 열렸던 왕위계승위원회에서 위원 43명 중 31명이 제1 왕위계승권자였던 무하마드 빈나예프 알사우드(57)를 무하마드 빈살만으로 교체하는 데 찬성했다는 것이 사우디 국영 SPA통신의 보도다. 세계 최대 석유 왕국인 사우디에서 벌어진 ‘왕좌의 게임’은 전 세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중요한 관심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중동에서 이슬람 수니파의 종주국을 자처하면서 지역 패권국가 자리를 노리는 사우디의 지도부에서 벌어진 권력구도의 변화는 지역정세와도 관련이 크다. 이는 지난 5월19일 도널드 트럼프의 사우디 방문과 이란 비난, 6월 초 시작된 사우디와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 리비아 등 친사우디 아랍 국가들의 카타르와의 국교 단절과 봉쇄와도 관련이 크다. 사우디의 궁정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이는 중동 정세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를 살펴보는 일은 이런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다.

참고로 두 사람의 이름은 무하마드로 동일하며 빈살만은 ‘살만의 아들’, 빈나예프는 ‘나예프의 아들’이란 뜻이다. 알사우드는 왕가인 사우드 가문 출신임을 나타낸다. 아랍인의 성명은 대개 자신의 고유 이름에 ‘누구의 아들’을 의미하는 빈이나 ‘누구의 딸’을 뜻하는 빈트가 죽 이어지는 방식으로 표기된다. 왕족이나 귀족, 고상한 집안 출신은 마지막에 가문을 표시한다. 지역별로 다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별도의 성이 없다.

우선 눈여겨볼 점은 살만 국왕의 후계구도가 변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두 번째라는 사실이다. 사우디 후계구도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살만 국왕은 2015년 1월 23일 즉위하자마자 첫 후계 구도를 발표했다. 제1 왕위계승권자는 동생인 무크린 빈압둘아지즈 알사우드(71) 당시 정보국장이었다. 살만의 전임자였던 압둘라 전 국왕 시절 살만은 제1 왕위계승권자였고 무크린은 제2 왕위계승권자였다. 살만이 즉위하면서 무크린이 제1 왕위계승권자 자리를 승계했다. 문제는 무크린이 제1 왕위계승권자가 된 것이 살만의 뜻이 아니라 전임자 시절 가족의 뜻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우디 왕가의 독특한 상속체제에 기인한다. 사우디의 사우드 왕가는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서구에서는 이븐 사우드로 부름, 1875~1953)에서 시작된다. 압둘아지즈는 1902년 알사우드 가문의 수장이 되고, 1932년 아라비아 반도의 대부분을 통합해 사우디 아라비아를 건국한 인물이다. 그는 생전에 공식적으로는 22명의 부인을 맞았으며 그 가운데 16명으로부터 37명의 아들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동시에 네 명 이상의 부인을 두지 않았지만 사별 등을 포함해 22명의 부인을 뒀다.

제1 왕위계승권자로 책봉된 무하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사우드 왕실은 압둘아지즈가 세상을 떠난 1953년부터 반세기가 넘도록 왕좌의 형제 상속을 계속해왔다. 사우드(재위 1953~1964)에서 시작해 파이잘(1964~1975)-할리드(1975~1982)-파드(1982~2005)-압둘라(2005~2015)를 거쳐 현재의 살만(2015~) 국왕으로 이어지는 6대가 모두 형제 상속으로 이어졌다. 2015년 자동 승계를 통해 제1 왕위계승권자가 된 무크린은 성인까지 생존한 압둘아지즈의 아들 중 막내로 35번째 아들이다. 무크린은 압둘아지즈 아들 세대의 마지막 왕위계승권자였던 셈이다.

이에 따라 살만 국왕은 2015년 즉위 직후 제2 왕위계승권자를 지명함으로써 압둘아지즈 손자 세대의 첫 왕위계승권자를 공식화했다. 바로 이번에 밀려난 조카 무하마드 빈나예프다. 무하마드는 살만 국왕의 동복형제인 나예프(1933~2012) 전 제1 왕위계승권자의 차남이다. 동부 주지사와 주스페인 대사를 지낸 형 사우드를 제치고 왕위계승권을 따냈다.

중요한 것은 살만과 나예프가 동복형제라는 사실이다.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제8왕비인 하사 빈트 아메드 알 수다이리(1900~1969)의 소생이다. 5대 국왕 파드(1921~2005)가 동복 형이기 때문에 살만의 즉위 자체가 한 왕비 아래에서 처음으로 두 명의 국왕이 나온 기록을 세웠다. 하사는 압둘아지즈의 외가인 수다이리 가문 출신이다. 하사의 아들 중 7명이 성인까지 성장했는데 모두 능력이 뛰어나 ‘수다이리 7형제’로 불렸다. 이들은 오랫동안 왕실과 정국을 주도해왔다. 파드 전 국왕이 장남이고 둘째 술탄(1928~2011)과 셋째 나예프는 제1 왕위계승권자에 올랐으나 국왕에 오르지 못하고 고령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살만은 수다이리의 아들 중 성인까지 생존한 여섯째 아들이다. 살만은 자신이 왕위에 오르자 동복형의 아들인 조카 무하마드 빈나예프에게 차차기 승계의 길을 열어줬던 셈이다. 수다이리계가 차차기에 왕위를 이어가도록 길을 닦은 셈이다.

살만은 한술 더 떠서 2015년 4월29일 아예 배다른 동생 무크린을 밀어내고 조카 무하마드 빈나예프를 제1 왕위계승권자로 올렸다. 문제는 그러면서 자신의 아들인 무하마드 빈살만을 제2 왕위계승권자로 올린 것이다. 압둘아지즈 손자대의 왕위 계승을 살만 자신이 세상을 떠난 직후로 당긴 것은 물론 자신의 아들이 차차기 국왕에 오를 수 있도록 손을 쓴 것이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살만 국왕이 수다이리계의 왕위 계승 독점을 기도하는 것이란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는 과정이었을 뿐 살만이 원하는 결론은 아니었던 것으로 이번에 드러났다. 살만은 급기야 지난 6월21일 무하마드 빈나예프조차 밀어내고 자신의 아들인 무하마드 빈 살만이 제1 왕위계승권자가 되도록 조치했다. 무크린과 무하마드 빈나예프를 차례로 제1 왕위계승권자 자리에서 밀어내는 2단계에 걸친 정지 작업을 거쳐 1953년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에서 부자 상속이 이뤄지는 길을 완성한 셈이다. 무하마드 빈나예프는 2년 남짓한 동안 제1 왕위계승권자 자리에 있다가 왕위는 물론 모든 공직에서 배제되는 화를 당했다. 2011년 제1 왕위계승권자에 올랐다가 1년 후 세상을 떠나 선친 나예프에 이어 2대에 걸쳐 왕좌 바로 앞까지 갔다가 국왕이 되지 못한 비운의 기록을 세웠다.

친미·친서방 성향 빈나예프 vs 중동의 매파 빈살만

눈여겨볼 점은 제1 왕위계승권자에서 물러난 무하마드 빈나예프와 새롭게 이를 승계한 무하마드 빈살만의 성향이 대조적이라는 점이다. 무하마드 빈나예프는 미국과 영국에서 교육받았다. 사우디 왕실 자체가 친미·친서방 성향이지만 서구에서 살면서 교육받은 그는 서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다른 왕실 인물과 결이 다른 이유다. 그는 사우디의 ‘왕실 안보’를 책임지기 위해 양성된 보안과 대테러 전문가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루이스&클라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학위를 받지는 못했다. 1985~88년 미국 중앙정보국(FBI)에서 보안 과정을 이수하고 92~94년에는 영국 스코틀랜드야드(경찰청)의 대테러 부대에서 훈련을 받았다. 외모는 두꺼운 안경을 쓴 온화한 모습이다. 하지만 테러는 물론 반정부 운동에 강경 대처해온 사우디의 대표적인 매파 인사로 꼽혀왔다. 99년 9·11테러 이후 사우디의 대테러 책임자인 내무부 보안담당 차관보를 지나면서 미국 등과 대테러 호흡을 맞춰왔다. 제1 왕위 계승권자가 되면서 내무장관을 맡아왔는데 이번에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다. 유튜브 등에는 사촌인 무하마드 빈살만을 포옹하며 제1 왕위계승권자가 된 것을 축하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 공개됐다.

이와 달리 무하마드 빈살만은 사우디 국내파다. 킹사우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아버지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권력의 속성을 배워왔다. 국방장관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강경파인 아버지의 정책을 충실하게 따른 것은 물론 부왕보다 더욱 강경 보수 정책을 주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의 군사력 증강에 박차를 가해 이란을 비롯한 시아파 세력,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이슬람 민주주의 정치세력에 맞설 것을 주장해온 중동의 매파다. 모하마드 빈살만은 국방장관으로서 특히 사우디의 이란 견제 정책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이다. 이란을 누르고 중동의 패권국가 자리를 차지하겠다는 것이다.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와 내전이 한창인 예멘 내전에 대한 개입을 확대한 것은 그의 결정이다.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수니파 반군을 지원해 시아파의 지파인 알라위파가 중심이 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에 맞서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부왕인 살만이 국방장관이던 2011년부터 계속해온 정책이다.

사우디 미래 발전 계획인 ‘사우디 비전 2030’ 주도

그의 성향에 영향을 끼친 것 중의 하나가 그의 어머니다. 그의 어머니 하다 빈트 팔라 빈 술탄 하틀린은 아라비아 반도의 유명한 군사 가문인 알아지만의 족장 라칸 빈 히탈라인의 손녀다. 어머니로부터 오로지 무력으로만 적을 제압하고 자신을 지키며 가문을 보존할 수 있다는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 왕가인 알사우드 가문의 방계인 알일루이 가문 출신으로 특권계층으로만 살아왔던 무하마드 빈나예프의 어머니와 대조적이다. 모하마드 빈살만이 국왕이 되면 사우디의 군사국가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 불을 보듯 빤하다.

돌이켜보면 살만 국왕은 2015년 1월 23일 국왕에 오른 직후부터 자신의 장남인 무하마드 빈살만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으로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것으로 보인다. 국왕이 되기 직전 자신이 맡고 있던 국방장관 자리를 즉위한 바로 그날 장남에게 넘긴 것도 심상치 않다. 아들이 불과 29세 때의 일이다.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세계 최연소 국방장관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뿐 아니라 이후 내각의 주요 자리에 무하마드 빈살만의 측근인 40∼50대 인사를 임명해 아들을 보좌하는 팀을 만들어줬다. 미국·러시아 등 주요국 정상과 면담하는 자리에 아들을 데리고 가거나 파견해 국제적으로도 실력자로 인정받도록 도왔다. 5월19일 사우디를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살만 국왕은 그동안 한마디로 장남에게 계속 힘을 실어준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무하마드 빈살만이 사우디의 미래 발전 계획인 ‘사우디 비전 2030’을 주도해왔다는 점이다. 이는 한마디로 석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경제를 다양화해 사우디를 선진 경제로 이끌겠다는 구상이다. 보건의료·교육·인프라·레크리에이션·관광 등 서비스 산업을 키우는 계획과 국내외 투자활동을 강화하고 소비자 제품을 비롯한 비석유 상품 교역을 늘리는 계획이 포함됐다. 아울러 군사비 지출을 늘리면서 군사장비와 탄약을 자체 생산하겠다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사우디를 원재료인 석유를 캐서 파는 1차산업 국가에서 중동의 경제를 이끄는 고도산업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군사적으로도 강국으로 거듭 나겠다는 원대한 계획이다. 2016년 4월25일 사우디 비전 2030의 세부 사항을 공식 발표한 인물이 바로 무하마드 빈살만이다. 이를 위해 최대 2000만 달러에서 최소 370만 달러에 이르는 각종 프로젝트 80개를 발주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는 단순히 석유 고갈 시대를 대비한 사우디의 미래 설계에 그치지 않는다. 중동 지역에서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다양한 세력에 맞서 사우디 왕실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실린 프로젝트다.

그런 무하마드 빈살만이 차기 왕위계승자가 되면서 사우디는 중동의 보수화에 대한 지원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는 2011년 2월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하야하고 2012년 7월 선거로 집권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이 2013년 7월5일 군부와 시민의 합작 쿠데타로 쫓겨나자 이집트 군부를 강력하게 지원해왔다. 당시 유혈사태가 벌어지자 유럽은 군부를 비난했고 미국은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였지만 당시 사우디의 압둘라 국왕은 이집트 군사정권이 “테러리즘 및 극단주의와 싸우고 있다”며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서방이) 이집트 내정에 간섭하는 것은 분리주의를 촉발하고 테러를 키우는 행위”라고 대놓고 비난했다. 친미국가인 사우디가 미국에 아랍세계에 아랍식 방식을 인정하라며 목소리를 높인 셈이다. 이는 서방에 군부나 군주 체제와 같은 ‘친미세력’이냐, 무슬림 형제단 같은 ‘이슬람주의’ 세력이냐를 선택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아랍세계에 아랍식 방식 인정하라’ 목소리 높여

바레인에서 시아파가 다수인 국민이 수니파 왕실에 대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자 군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중동에서 민주화 세력을 눌러 왕조 체제를 비롯한 보수적인 정권에 대한 전복 기도를 하지 못하게 원천 봉쇄하는 효과가 있다. 현재 미국과 손잡은 사우디와 이집트를 비롯한 몇몇 아랍국가가 카타르를 ‘테러를 지원했다’며 압박하는 상황의 본질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우디의 비위에 거슬리면 테러 국가로 모는 것은 2013년이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당시는 이집트의 민간 정부가 대상이었고, 지금은 중동에서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하겠다는 카타르로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다. 이는 친미세력과 민주화 세력 중에서 선택하라는 것이나 다름 없다. 살만 국왕이 일종의 ‘궁정 친위 쿠데타’로 장남을 왕위계승자로 올린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제1 왕위계승권자가 된 무하마드 빈살만은 카타르에 대한 봉쇄와 압박을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재 시아파 맹주로 사우디의 숙적인 이란은 물론 수니파가 국민의 대다수인 터키까지 카타르를 지지하고 있다. 카타르 사태가 중동의 세력 경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 터키는 과거 이집트의 민주정부를 지원하고 쿠데타 세력에 반대했다. 군부를 지지하고 민주정부를 테러세력으로 몰았던 사우디를 좋게 볼 수가 없다. 국내에서 세속주의 군부 세력과 싸우고 있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다.

사우디와 친사우디 국가들은 최근 카타르에 이란과 사실상 단교하고 터키군을 철수시키며 카타르 왕실 소유인 알자지라 방송을 폐쇄하라는 등 13개 항의 요구 조건을 카타르에 보내 압박해왔다. 하지만 카타르와 터키가 이를 거부하면서 사태가 장기화될 조짐이다. 이 사태가 사우디에 불리한 쪽으로 종결되면 무하마드 빈살만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사태는 치킨게임으로 비화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런 사우디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무하마드 빈살만이 제1 왕위계승권자가 된 당일 그와 전화통화를 하고 양국 간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무하마드 빈살만 왕자는 중동 전역은 물론 중동을 넘어 (세계의) 안보, 안정, 번영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테러리스트 및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자금줄 전방위 차단의 중요성, ‘단교 사태’에 처한 카타르 해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속적인 평화달성 노력, 미국과 사우디 간 경제협력 심화발전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발표됐다. 사우디는 트럼프 방문 때 1100억 달러에 이르는 미국산 무기체계를 구입하기로 했다. 비즈니스 대통령이 되고 싶은 트럼프의 욕심이 사우디의 중동 패권국가 의지를 간과하게 한 것은 아닌지 염려스럽기만 하다.
출처:http://jmagazine.joins.com/economist/view/317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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