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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국내] IS 쇼크, 그들은 세상을 어떻게 홀렸나?

무슬림사랑 2016-10-30 (일) 06:57 2년전 1835

'시라크' : 개방된 전선

새 거처를 마련했다.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이스탄불과 카이로를 전전했던 보름간의 '난민 생활'을 청산했다. 알렉산드리아에 보금자리를 꾸렸다. 그 유명한 옛 도서관이 있던 곳이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안 도시이기도 하다. 현대식으로 탈바꿈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재개장한 것이 2002년이다.

바다가 내다보이는 전경에, 후방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대학교가 자리한다. 근방에는 아랍문화관과 로마박물관도 있다. 나로서는 안성맞춤한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동네 도서관' 삼아 이슬람 세계와 지중해 세계를, 유럽과 아랍을 아울러 살펴가려고 한다. 서유라시아를 통으로 사고하는 훈련장으로 삼을 것이다. 

카이로를 거쳐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는 동안, 숙소서는 늘 알자지라를 틀어두었다. 실은 올해 내내 그러했다. 여전히 7할은 들리지 않는다. 혹은 이제는 3할이나 들린다. 이곳을 떠날 즈음이면 절반은 알아들었으면 좋겠다. 단연 화제는 이슬람국가(IS)이다. 최근 세력이 부쩍 약해졌다. 매일같이 전황 속보가 전해진다. 그 중에서도 핵심은 알레포와 모술이다. 이스탄불에서는 알레포 소식이 잦더니,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단연 모술이 화제이다. 훗날 숱한 역사가들이 저술할 것이 분명한 '모술 전투'가 시작되었다. 

모술은 이라크 북부에 자리한 도시이다. 알레포는 시리아의 북부에 있다. 즉 IS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넘나들며 존재했다. 혹은 이라크와 시리아의 국경을 돌파하여 '시라크'라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했다. 당시 그들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하고 러시아가 수긍했던 작위적인 국경선을 철폐했노라 자랑했다. 20세기의 식민주의를 청산한 이정표로 삼은 것이다. 오스만제국 붕괴 이후 국가 간 체제로 재편되었던 아랍 세계에 일대 지정학적 충격을 가한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 유럽 등 '외부 세력'은 물론이요 이라크와 시리아 등 당사국들 또한 IS 퇴치에 사활적인 까닭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교차하고 있지만, 기존의 국가 간 체제로 되돌리고자 함에는 내/외 합작이다. 알레포에서는 러시아와 시리아가 손을 잡았고, 모술에서는 미국과 이라크가 뜻을 모았다. 20세기와 21세기가 격렬하게 충돌한다.

IS가 돌연변이는 아니다. 글로벌 지하드 운동의 점진적 진화의 소산이다. 뉴욕의 상징적 건물에 가공할 테러를 가했던 알카에다보다 진일보했다. 더 이상 산발적이고 단속적인 활동을 펼치는 테러 집단에 그치지 않는다. 특정한 영토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자신들의 이념에 따라 질서를 창출하여 사회를 통치하는 엄연한 국가로서 등장했다.

재차 장소가 관건적이다. 괜히 이라크가 아니다. 2003년 이라크 전쟁과 긴밀히 연루되어 있다.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되었다. 중앙 정부가 해체되었다. 외세에 힘입은 새 정권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국가와 사회 사이에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다. 수많은 비정부조직들이 창궐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생긴 것이다. 

또 한 번의 결정적인 계기가 2011년에 일어난다. 이른바 '아랍의 봄'이다. 여러 아랍 국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존 정권이 무너지거나 흔들렸다. 통치되지 않는 무질서 공간이 확대된 것이다. 철권을 휘두르던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에도 파장이 미쳤다. 곧장 내전 상태로 들어갔다. 시리아는 이라크의 이웃 국가이다. 이라크에서의 경험을 발판삼아 활동 공간을 대폭 확장시킬 수 있었다. 천시가 맞아떨어졌다. 

실은 '아랍의 봄' 이전부터 지하드 전사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사이를 왕래했다. 이 또한 이라크 전쟁 10년의 산물이다. 수많은 지하드 전사들이 반미 무장 투쟁을 전개하기 위하여 이라크로 집결한 것이다. 이라크로 진입하는 주요 통로가 바로 시리아였다. 아사드 정권도 묵인했다. 아사드는 미국의 체제 전환과 민주주의 이식의 다음 목표가 시리아가 될 것을 우려했다.

미국을 이라크의 수렁에 고착시키고 이라크 전쟁의 기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가능한 많은 지하드 전사들을 이라크로 투입하는 편이 유리했다. 시리아의 급진 세력들을 이웃으로 송출하는 편이 내치의 측면에서도 이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들이 IS라는 영토 국가로 진화하여 자신의 정권을 겨냥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IS가 평지에서 돌출한 것도 아니다. 로드맵이 있었다. 알 수리라는 사상가가 있다. 1958년 시리아에서 태어나 스페인 시민권을 획득하고 유럽에서 활동하는 지하드 이론가이다. 한때는 빈 라덴의 측근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반미 무장 투쟁의 선전 선동을 담당했다. 그가 글로벌 지하드 이론을 체계화한 저서를 발표한 것이 2004년이다. 무려 1600쪽에 달하는 대작이다.

지금은 인터넷에도 (아랍어로) 공개되어 있다.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맞서서 네트워크 지하드 전략을 이론화했다. 나는 10장짜리 요약본만 겨우 읽어보았다. 혹은 겨우겨우 읽어내었다. 읽는 내내 기묘한 기시감이 일었다. 대일본제국의 총력전에 맞서 마오쩌둥이 집필했던 모순론과 지구전론, 근거지론이 연상되었다. 압도적인 힘의 격차에 맞서는 게릴라 전술, 비대칭 전략을 수립한 것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머지않아 대규모 조직화, 무장화의 기회가 오리라고 예측한 대목이다. 1979년 소련의 침공에 맞서 탈레반 정권을 수립했던 아프가니스탄 경험을 모델로 삼아, 중동에서도 새로운 이슬람국가를 창출할 수 있으리라고 전망했다. 수리는 이를 '개방된 전선'이라고 불렀다. 

그의 예상은 적중되었다. 실제로 2011년 '아랍의 봄'으로 '개방된 전선'이 출현한다. 이라크의 서북부와 시리아의 동북부가 바로 그곳이다. 바로 그 '개방된 전선'에서 IS가 탄생하고 성장해온 것이다. '아랍의 봄'으로 중동까지도 민주화될 것이라 했던 '교조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근본주의'의 허를 제대로 찌른 것이다. 

더 더욱 놀라운 것은 2000년부터 2020년까지를 내다보는 장기 계획마저 있었다는 점이다. 각성과 개안, 부활과 변혁, 국가 선포, 전면 대결과 최종 승리에 이르는 7단계로 분류했다. 2001년 9.11 테러가 각성 단계에 해당한다. 2011년 '아랍의 봄'이 변혁기이다. 2014년에는 실제로 국가 선포가 단행되었다. 

현재 전개되고 있는 전쟁은 전면 대결기에 속한다. 그들은 2020년을 최종 승리 시점으로 예상했다. 앞으로 4년 후이다. 당장의 전황만으로 IS의 운명에 섣부른 예단을 금하게 되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이 대장정 끝에 연안까지 밀려간 것이 1935년이었다. 1930년대, 누구도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예상할 수 없었다. 대일본제국과 중화민국에 견주어 비할 세력이 아니었다. 오지의 토굴에 모여 사는 비적 무리에 가까웠다. 즉 IS의 장래 또한 크게 열려 있다. 보편사의 객관적 법칙일랑 통용되지 않는다. 역사는 시학적 시간이지, 수학적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2020년, 칼리프 제도의 부활을 완성시킬 것이라고 했다. IS가 비단 지정학적 충격에 그치지 않는 까닭이다. 사상사적 충격이다. 1924년 오스만제국의 해체와 더불어 완전히 사라졌다고 여겼던 칼리프 제도를 복원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IS의 출현을 일개 추문으로 기각해서는 곤란하다. 거대한 파문으로 접수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근대적 세계 지도의 한 모퉁이가 찢겨 나가면서, 1400년 이슬람 문명의 굵은 통뼈가 그 실체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역사의 종언'을 조롱이라도 하듯, 역사의 대반격을 펼쳐가고 있다.

칼리프의 재림 

이슬람 국가의 선포가 단행된 것은 2014년 6월 29일이다. 최고 지도자 바그다디가 칼리프에 취임한다고 선언했다. 

샤리아, 즉 이슬람법을 알아야 한다. 칼리프는 '시라크'라는 영토 국가의 지배자로 그치는 개념이 아니다. 즉, 대통령이나 총리가 아니다. 이슬람법에 따르면 일국의 지배자는 그저 '부족장'에 그칠 뿐이다. 20세기형 '일국 이슬람주의'는 이슬람법에 합치되지 않는 것이다. 칼리프만이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 '움마'의 정치적 지도자에 값한다. 이슬람 세계, 즉 이슬람적 천하의 유일한 지배자로서 天子(천자) 내지는 황제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 전 세계 이슬람교도들이 IS의 지도자를 칼리프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칼리프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출현했으며, 그가 일정한 지배 영역을 확보했다는 점은 실로 놀라운 사건이다. 이 놀라움을 '사상적 충격'으로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관성적이고 타성적인 사고부터 타파해 가야 할 것이다. 

IS를 선포하고 칼리프를 선언했던 동영상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곳곳에 이슬람적 상징을 차용하여 전 세계에 송출한 기획물이다. 바그다디는 검은 터번을 두르고 등장했다. 검은 터번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후손들이 쓰는 것이다. 혈통적 정통성을 과시한 것이다. 더 중요한 점은 마호메트가 늘 검은 터번을 둘렀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630년 메카를 (재)정복했을 때 처음 썼다고 한다. 즉, 모술의 점령을 메카의 정복에 빗대었던 것이다. 이슬람 문명사에 무지한 외부인들은 쉬이 간파하기 힘들다. 그러나 무슬림이라면 누구라도 그 의미를 당장 알아챘을 것이다. 

6월 29일이라는 시점 또한 상징적이었다. 라마단이 시작되는 첫 번째 날이었다. 전 세계 무슬림 공동체가 단식을 행하는 라마단은 종교적 감정이 특히 고양되는 시기이다. 올해 테헤란에서 라마단을 경험할 수 있었다. 단식을 온종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낮에만 곡기를 끊는다. 밤에는 도리어 성대한 잔치를 벌인다. 일종의 축제 기간이다.

환한 달을 바라보며 모스크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집에서 음식을 나누어먹는 '아라비안나이트'가 펼쳐진다. 더불어 TV 시청률이 높아지는 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슬람 세계의 주요 방송국들 또한 라마단 기간에 맞추어 특집 드라마를 편성한다. 그 한 달의 특수를 위하여 1년간 공들여 특집 방송을 준비하는 것이다. 6월 29일은 그 특집 드라마들의 제1회 방송이 나가는 날이었다. IS는 바로 그 시점을 노린 것이다. 칼리프의 부활이라는 실사판 대하 드라마를 송출함으로써 단숨에 이슬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탁월한 미디어 전략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7월 4일은 라마단 달의 첫 번째 금요 예배가 있는 날이었다. 이슬람권에서는 금요일과 토요일이 주말이다. 일요일부터 한 주가 시작된다. 라마단의 첫 금요 예배는 특히 각별하다. 각국의 주요 모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설교가 행해진다. 응당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날에 맞추어 바그다디 또한 설교단에 오른 것이다. 바그다디의 연설은 오바마에 못지않다. 코란 낭독 또한 탁월하다. 물론 나는 그 연설과 낭독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다만 그의 낭독 실력을 인정하는 이슬람 학자들을 여럿 만났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고전을 정확하게 인용하며 오늘을 설파한다고 한다. 신심 깊은 신자들로부터 존경받기 쉬운 유형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동영상으로 유통되는 그의 모습은 그러하다. 그래서 칼리프 부활의 대의에 동의하는 무슬림이라면 호소력이 무척 깊을 것이라고 한다.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존재했던 이슬람 세계의 '요순시대'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것이다.

반면 외부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잔혹한 참수 영상이다. 이 또한 주도면밀하게 연출되었다. 참수 대상을 선별하고 엄별한다. 미국인이 우선이고, 다음이 영국인이다. 이들 국가의 이라크 및 중동에 대한 군사 개입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참수에 앞서 군사 개입 중지를 요구하는 영상을 먼저 내보내 일정 기간을 기다린다. 나름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인질들에게 오렌지색 수의를 입히는 것 또한 상징적이다. 이라크의 아부그라이브 형무소에서 전쟁 포로를 학대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던 수인복이 바로 오렌지색이었다. 관타나모 기지의 악명 높은 수용소에서도 오렌지색 수의를 입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IS가 미국처럼, 영국처럼 그 나라를 공습하고 지상군을 파병하여 점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체제 전환'을 통해서 자신들의 정치 제도를 이식할 수도 없다. 다만 인질들에게 오렌지색 수위를 입히고 처형함으로써 부당한 대우에 분노했던 이슬람교도들에게 대리 만족을 시켜주고 있다. 이슬람 문명을 회복하는 글로벌 지하드 운동으로 정당성과 정통성을 확보해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재림한 칼리프의 책무이기도 할 것이다. 100년간 단절되었던 이슬람식 천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칼리프, 글로벌 스테이트 

고로 그들의 사상전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슬람 고전에 기초한다. 권위 있는 이슬람 학자들의 견해를 활용하고, <코란>과 <하디스>를 인용하며 자신들의 명분을 확인한다. 새로운 건국 이념의 부재, 즉 새로운 사상과 담론을 제시하는 것에 무심한 것이야말로 신생 국가 IS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진리는 이미 있었다. 오래된 것이었다. 보편적 진리는 변하지 않는 법이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거듭 달라지는 국법 위에 이슬람법이 자리한다. 그것이 지난 세기에 깨어져나간 것이다. 근대(Modern)에 대한 발본적인 도전이다.

고색창연한 것만도 아니다. 도리어 그 반대이다. 최첨단을 달린다. 뉴미디어와 디지털 미디어를 십분 활용한다. 고전적 이슬람을 디지털 매체와 결합시켰다. '디지털 이슬람'으로 전 세계 무슬림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한다. 디지털 신대륙이야말로 성전(聖戰)을 전개하는 성역(聖域)이 된 것이다. 

2014년 6월 창간한 <다비쿠(دابق‎‎)>가 대표적이다. 종이 잡지가 아니다. 디지털 매거진이다. 창간호 특집에서는 <하디스>의 종말론을 환기시켰다. 예언자 시대의 아라비아 반도와 오늘의 중동 상황을 거듭 비교한다. 당시도 20세기 못지않은 혼란과 분란의 시기, 이슬람판 '전국 시대'였다. 

마호메트의 히쥬라(성천)와 지하드(성전)를 따라서 이슬람적 평화가 달성되었던 것처럼, IS와 더불어 태평성세를 회복하자는 프로파간다이다. 2호의 특집 기획은 구약성서와 코란에 바탕을 둔다. 특히 노아의 방주를 강조했다. IS로의 이주야말로 대홍수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웅변한다. 4호는 역사 특집이다. 십자군의 실패를 복기했다. 중세 십자군의 패퇴에 견주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미국이 침몰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올해 7월까지 15호가 발간되었다. 

알카에다 또한 자신들만의 미디어가 있었다. 독자적인 온라인 뉴스를 시작한 것이 2005년이다. 돌아보니 의미심장하다. 방송의 이름이 <칼리프의 소리(The Voice of the Caliphate)>였다. 10년 사이 칼리프가 재림했고, IS는 더욱 진화했다. 라디오 방송국은 이라크에 있고, 위성 TV 방송국은 리비아에 있다. 24시간 인터넷 방송 채널도 출범시켰다.

일방향의 미디어도 아니다. 분산적이고 쌍방형적이다. 전 세계 지하드 전사들이 개별적으로 미디어 활동을 한다. HD 카메라, 편집 소프트웨어, 특수 효과 등을 활용하여 최상의 화질로 영상을 제작하고, 세련된 디지털 매거진을 발행한다. 저마다 사진과 동영상을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스카이프를 통해 대화하면서, 16억 '아랍어 공론장'에 빛의 속도로 전송, 재전송한다. 페이스북을 차용한 무슬림북(Muslimbook)도 있고, IS가 개발한 스마트폰 앱도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북부 이라크를 무대로 지하드 전사가 되어 미군과 싸우는 전쟁 게임이 인기라고 한다. 

그래서 디지털 세대들이 가장 크게 호응한다. 노트북과 태블릿, 스마트폰을 끼고 살아가며 디지털을 '모어'로 삼는 밀레니엄 세대들이 열광하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과 사회 연결망 서비스(SNS)의 최고수들이다. 범죄 조직과 아동 포르노 유통 등에 활용되는 지하 인터넷까지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미국의 군사 안보망에 필적하는 방화벽을 갖춘 채 활동한다.

디지털 금융에도 능하다. 자금 또한 온라인으로 입금, 출금, 송금한다. 비트코인 같은 가상화폐도 능숙하게 활용한다. 도청과 추적을 방지하는 독자적인 시스템도 갖추었다. 오히려 그들을 해킹하는 세력들을 역추적하기 위한 위장 사이트도 만들어 놓았다. 그 덫에 접속하는 순간 적들의 IP 주소가 드러난다. 그 경로를 통해 해킹하여 상대편의 사이트를 다운시키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수들의 전략이다. 계속 잘못된 정보가 유통되도록 '관리'할 뿐이다.

IS는 디지털에 기초해 등장한 최초의 국가이다. 지하드 전사들의 모집과 채용부터 선전 선동, 나아가 전장에서의 전술 전략 입안까지 디지털에 의존한다. 아니 국가 건설까지도 온라인 연결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가상계와 실재계를 오고가며 현실을 증폭시키고 증강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단기간에 대규모 군대를 확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무력에 기반을 둔 영토 지배 또한 유지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디지털 칼리프가 인쇄술에 기반을 둔 '상상의 공동체', 20세기형 국민 국가를 내파시킨 것이다.

IS와 세계를 잇는 온라인 연결망은 아랍어가 대세이다. 그러나 영어의 비중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 아랍어 공론장에서 인기를 얻은 콘텐츠는 신속하게 영어 자막이 깔려 재유통된다. 사이버 공동체 특유의 협동과 공유 정신이 가동되는 것이다. 러시아어, 우르드어, 중국어 자막도 생겨나고 있다. 즉, IS 네트워크는 문자 그대로 '글로벌'하다. 국민 국가(Nation-State)가 아니라 지구 국가(Global-State)이다. 그래서 '디지털 세계 시민'을 자처한다. 어느새 '움마'에 근접해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핫하고 쿨하며 힙하다고 여긴다. 진지할 뿐 아니라 근사하기까지 한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 미디어들은 폄하하기 일쑤이다. 먹고살기 힘든 루저들의 비행과 탈선으로 간주한다. 청소년 문제쯤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빈곤 타개를 위해서, 빚에 쪼들려서 이주한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청년들은 결국 IS에서의 생활을 견지지 못하고 재탈출을 감행하여 구미의 미디어에 노출되는 것일 테다.

그러나 일부에 그친다고 보아야 한다. 다수는 뜻하는 바 있어 참여하는 것이다. 압도적인 무력을 갖춘 미군과 맞서서 싸우는데 돈 때문에 달려갈 수가 있을까?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한국인 용병들과도 다르다. 그들은 세계 최강의 미군을 지원하는 일이었지,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하러 간 것이 아니었다. 물질적 유혹보다는 정신적 감화가 더 크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용병보다는 의용병이 더 어울린다. 자신들의 이주를 히쥬라(هِجْرَة), 성천(聖遷)에 빗대는 것이다. 

이슬람력의 '원년'은 서력으로 622년이다. 마호메트가 태어난 해도 아니고, 예언의 계시가 시작된 해도 아니다. 탄생도 말씀도 원년으로 기리지 않는다. 622년이 '원년'인 까닭은 마호메트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한 해이기 때문이다. 다신교 신자들의 적대와 적의에 둘러싸인 메카에서 탈출하여 메디나로 이주한 것을 '성천'으로 기리는 것이다. 바로 그해로부터 찬란한 이슬람문명이 비롯되었다고 여긴다. 메디나로 이주하여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이슬람 통치를 실현함으로써, 630년 메카를 재탈환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재탈환을 완성했던 630년보다 대이주를 감행했던 622년을 더 높이 치는 것이다.

IS에 집결한 사람들 역시도 622년을 환기하고 있음에 분명하다. 제2의 히쥬라를 단행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을 선포한 2014년에만 세계 80개국, 1만5000명이 결집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다국적군'이나 '연합군'으로 부르는 것 또한 적절치 않다. 어디까지나 무슬림 공동체로서 하나일 뿐이다. 즉 IS는 '국민'으로 구성되지 않은 복합 국가이며 미니 제국이다. 태생부터 철두철미 탈민족주의, 탈국가주의, 탈근대주의다. 

CNN과 BBC에서는 IS에서 탈출한 사람들의 인터뷰만 나온다. 그러나 알자리라 아랍어 방송이나 IS와 소통하는 아랍어 공론장에서는 IS로 진출한 이들의 인터뷰를 접할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은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에서 이란과 터키의 아나톨리아 고원을 지나 이라크의 모술까지 이르렀던 한 무슬림 여전사의 인터뷰였다.

2014년 당시 25살이었다. 2001년 12살이었다는 말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으로 12살 소녀의 삶은 송두리째 무너졌다. 부모와 오빠와 여동생 그리고 친구들까지 모조리 죽었다. 마을 공동체가 일시에 사라졌다. 고향은 폐허가 되었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그녀에게 IS는 한줄기 빛이었다. 죽을힘을 다하여, 필사적으로 모술까지 이른 것이다.

나는 습관처럼 기존의 국경선을 지운 유라시아 전도를 펼쳐놓고 그녀의 이동 경로를 그려보았다. 어마어마한 거리다. 고산과 사막이 이어지는 험지이기도 하다. 재차 20세기의 대장정이 연상되었다. 상하이에서 출범했던 중국공산당이 연안까지 퇴각했던 거리와 얼추 비슷하다. 연안에는 중국인들만 있던 것이 아니다. 조선인도 있었고, 베트남인도 있었고, 몽골인도 있었다. 타이인, 인도네시아인도 있었다. 동아시아 좌파들의 해방구였다. 얼핏 스페인 내전도 떠올랐다. '사회주의 국제주의'에 헌신하는 유럽 좌파들도 군사 파시즘에 맞서 스페인으로 달려갔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의 대장정과 스페인 내전을 빗대는 이유는 간단하다. '진보파'들의 편견을 교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저들 또한 그들처럼 자신들의 이념과 신념을 위하여 IS에 지원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이 불의한 세계를 타도하겠다는 목적의식만큼은 동일할지도 모른다. 다만 그 극복의 경로와 방편이 다를 뿐이다. 저들은 어디까지나 1400년 이슬람 문명사의 지평에서 20세기를 회고하고 21세기를 열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슬람 세계의 독자적인 논리를 공부하지 않고서는 해석도 공감도 되지가 않는다. 억측만 난무하고 오해만 쌓일 뿐이다. 열린 사고가 절실하다.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귀를 기울이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근대성의 주박에 결박되지 않는, '정치적 올바름'에 포박되지 않는, 사상해방이 긴요하다. 

Arab Spring : 문명 해방 운동 

'아랍의 봄' 직후 개별 국가에서 정치 참여의 공간이 대폭 확장되었다. 그곳에서 약진한 것은 이슬람주의 온건파였다. 무슬림형제단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 이슬람식 개혁 노선을 추구하는 세력들이 지지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통치 능력을 구비하고 있지는 못했다. 곧장 기득권 세력들이 저항했다. 

'세속주의'의 보루, 군부가 대표적이다. 이집트부터 (재차)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다. 청년들은 깊이 좌절했다. 민주주로의 이행과 제도 내 개혁에 대한 회의가 더욱 깊어졌다. '일국 이슬람주의'는 '일국 사회주의'처럼 애초 어울리지 않는다는 각성이 일었다. 정의롭지 못한 국가권력에 빌붙어 이슬람법을 곡해하는 어용학자(울라마)들에 대한 불신과 불만도 폭발했다.

그들에게 칼리프의 복원을 제창하는 IS는 매혹적인 선택일 수 있었다. 예기치 않은 곳에서 뜻밖의 출로가 열린 것이다. 튀니지에서, 이집트에서, 요르단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예멘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IS로 향했던 이유이다. 본디 튀니지인, 이집트인, 요르단인, 사우디인, 예멘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슬람적 보편을 구현했던 오스만제국에서는 오로지 무슬림이 있었을 뿐이다. 알라 아래 하나였다. 

그들은 더 이상 20세기형 민족 해방 운동에 투신하지 않는다. 국민이기를 거부한다. 국민 국가에 적응함으로써 독재자들의 길을 열어주고 말았다. 그들이 '움마'(이슬람 공동체)를 해체하고 개별적 국민으로 동원함으로써 이슬람의 회복이라는 지하드를 방치하고 억제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럽의 식민주의에서 벗어나 '독립'을 쟁취했음에도 불구하고 문명적 정체성을 회복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어디까지나 '건국(建國)'이었지 '복국(復國)'은 아니었다.

아니, 국가 간 체제라는 외래의 시스템이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이교도의 지배'가 연속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간 체제에 의탁하여 독재를 지속하는 자국의 지배 세력에 대해서도 지하드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무슬림으로서의 의무이다. 국가가 지하드를 수행하지 않노라면, 이제는 그 국가에 맞서서라도 지하드를 수행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을 가로막는 기성의 근대 국가야말로 척결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이 멀리 있는 적이라면, 중동의 국가들은 가까이 있는 적이다. 민족 해방 운동 이후의 '문명 해방 운동'의 출현이다. 그것이 진정한 '아랍의 분출(Arab Spring)'에 가까울 것이다. 그 솟구치는 역사의 물결을 타고 오름으로써 IS 또한 삽시간에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IS를 '국제 사회(International Community)에 대한 도전'이라고 하는 말은 정곡을 찌른 표현이다. 그들은 20세기형 국제 사회에 도전하고 있다. 구미식 세계 질서에 도전하여 이슬람 세계 질서의 복원과 갱신을 희구하고 있다.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3대륙을 아울렀던 오스만제국을 30여 개 국민 국가로 분열시켜 지배했던 20세기의 영국과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중동 대혼란의 근저에 구미(歐美)가 자리한다. 영미가 이식한 근대적 국제 질서야말로 화근인 것이다. IS는 그 100년의 대혼란을 청산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등장했다. 올바른 방책이 아닐 수 있다. 최선의 해법이 아닐지 모른다. 아니,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다시 원상으로 복구시키는 것 또한 묘안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봉합에 그친다. 서아시아의 대분열 체제를 지속시키는 하책에 그칠 뿐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은 봉합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영국은 더 이상 19세기의 대영제국이 아니다. 미국도 이제는 20세기의 대미제국이 아니다. 분할 통치를 통하여 억누를 수 있었던 완력이 완연하게 약해졌다. 결국은 탈이슬람화의 20세기를 거슬러 재이슬람화의 21세기로 반전되어갈 공산이 훨씬 크다. 즉 아랍에서 되튀어 오르고(spring) 있는 것은 다시 한 번 이슬람 문명이지, 서구화도 민주화도 아니다. 

그럴수록 이슬람의 독자적인 세계관을 공부해가지 않을 수 없다. 1400년 이슬람 문명사의 지평에서 2016년을 독해해야 한다. 아니 올해는 그들에게 "1437년"이다. 현재를 1437년으로 헤아리는 시간 감각의 구조 조정이 필요하다. 역사 없는 시사가, 사론 없는 이론이 거듭된 오인과 오판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 첫 실마리로 이슬람의 고유한 세계 질서인 '이슬람의 집'이라는 개념부터 짚어본다. 설령 IS가 아닐지언정, 그들은 종내 딴집살이를 마감하고 '이슬람의 집'으로 귀의할 것 같기 때문이다.  

이병한 역사학자 

출처: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_list_writer.html?search_no=10084&name=%EC%9D%B4%EB%B3%91%ED%95%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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