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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국내] IS 테러리스트가 된 어느 독일 유망주의 죽음

무슬림사랑 2018-01-21 (일) 13:55 28일전 79


(베스트 일레븐)

꽤 오래전 사연이긴 하다. 하지만 좌절을 극복하지 못한 축구 유망주가 잘못된 선택에 내린 탓에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다는 스토리 때문에 독일 내에서 종종 회자되는 인물이 있어 소개한다. 주인공은 십년 전 2013년 시리아에서 목숨을 잃은 부라크 카란, 아마도 이름이 무척이나 낯설 듯하나 한때 독일의 축구 유망주로서 꽤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터키 이민자 가정 출신인 부라크는 2003년 바이얼 04 레버쿠젠을 통해 축구에 입문해 헤르타 베를린·함부르크 SV·하노버 96 등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잔뼈가 굵은 클럽의 유소년 팀을 두루 거친 유망주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였으며, 독일 U-16대표팀과 U-17대표팀을 거치는 등 어려서부터 재능을 인정받았다. 사미 케디라·데니스 아오고·케빈-프린스 보아텡 등이 부라크의 동기생으로서 스타가 된 케이스다. 

하지만 이 유망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지난 2013년 시리아 북부 도시 아자즈에서 이뤄진 공습 때 IS(이슬람레반트국가)의 일원으로 전투에 참가하다 사망했기 때문이다.

동료의 기억 속 부라크는 어떤 인물?

2013년 부라크의 사망 소식이 독일에 알려졌을 때, 독일 축구계는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부라크와 직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이들이 꽤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독일 연령별 대표팀에서 함께 했던 마르크-안드레 크루스카는 독일 매체 <벨트>와 인터뷰에서 “U-15대표팀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많이 친하진 않았어도 우리는 늘 축구에 대해서 얘기했을 뿐 종교적 신념에 대해 얘기한 적은 없다”라고 추억했다.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마르쿠스 올름 역시 “부라크는 메카를 향해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올리는 독실한 종교인이었다. 하지만 무척 활기찬 친구기도 했다”라고 추억했다. 독일 생활에 잘 적응한 흔히 볼 수 있는 독실한 신자 정도였지 무장 세력에 가담할 인물이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랬던 부라크가 왜 이런 위험한 결정을 내린 것일까?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요아힘 뢰프 감독이 속한 에이전시의 대표를 맡고 있는 터키계 출신 에이전트 하룬 아르슬란의 증언이다. 당시 부라크와 계약을 맺고 있었던 아르슬란은 “부라크는 그냥 평범한 아이였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그의 죽음에 무척 슬프다”라면서도 “아마 부상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짚었다. 

아르슬란이 거론한 ‘부상’은 부라크가 U-17대표 시절 입었던 심각한 십자인대 파열 부상이다. 한때 그의 동료였던 올름의 증언은 좀 더 구체적이다. 올름은 “부라크가 급진주의자가 될 만한 징후를 볼 수 없었다”라면서도 “부상을 입은 후 과거의 기량을 되찾는데 무척이나 힘들어했다. 알레마니아 아헨 2군 팀에서 재기를 노렸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라고 떠올렸다. 결국 부라크는 만 20세가 되던 2008년 돌연 축구 선수 커리어를 그만 뒀다. 부라크는 동기생들이 축구 스타가 되어 승승장구할 때 시나브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혔다.

요주의 인물, 그리고 테러리스트가 된 유망주

축구 선수의 길을 접은 후 부라크는 엉뚱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실 조짐은 있었다. 2010년 뒤셀도르프 지역 검찰은 법원의 허가를 받아 부라크의 전화 감청을 추진한 바 있다. 국가 테러 범죄를 일으킬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기 때문이다. 이유가 있다. 카란은 2009년 고향인 부퍼탈에서 사귄 지인 두명과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났다. 카란은 도중에 귀국했지만, 나머지 두 명은 각각 테헤란과 파키스탄 국경 지대인 와지리스탄에서 정착했다. 

그런데 카란과 함께 여행을 떠났던 인물들은 부퍼탈을 근거지로 삼아 독일 내에서 살라피스트(이슬람 급진주의자)로 유명했던 엠라 에르도안, 뷔야민 에르도안 형제였다. 이들은 파키스탄을 근거지로 한 알카에다에 가담했다. 이중 엠라는 소말리아의 이슬람 무장 단체인 알 샤밥과도 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랫동안 ‘위험인물’ 엠라를 눈여겨보고 있던 독일 정부로서는 이 여행이 수상하다고 여겨 독일 법원의 허가를 받아 부라크까지 사찰한 것이다. 하지만 독일 검찰은 ‘위험한 형제’와 함께 여행을 떠난 부라크가 테러 단체에 가담했다는 어떠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자칫 독일 검찰은 생사람잡듯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비판을 받을 위기에 직면했다.

하지만 독일 검찰이 옳았다. 본래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부라크는 이 여행을 통해 이슬람 급진주의에 완전히 경도됐으며, 2011년에는 이슬람 과격 무장단체인 밀라투 이브라힘의 수괴인 모하메드 마흐무드와 접촉해 조직에 가담했다. 이후 부라크는 부인과 두 명의 딸을 데리고 터키 국경지대를 통과해 시리아로 넘어가 IS에 가담했다. 이름도 아부 압둘라 알 투르키로 바꿨다. 

알 투르키가 된 부라크는 유투브에 자신의 전투 영상을 올리며 완벽한 테러리스트가 됐음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부라크는 영상을 통해 “어머니 절 위해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시를 암송하는가 하면, 이교도들과 싸우는 것이 즐겁다는 기색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형제 무스타파 부라크는 이 전쟁에 참가하길 원치 않았고 그저 의약품을 제공하는 등 국제 봉사 활동을 위한 조직에 참가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칼리니코프 자동 소총을 든 부라크의 모습이 모든 것을 설명했다.

부라크는 2013년 10월 11일 시리아 북부도시 아자즈에 가해진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 그의 아내와 두 명의 딸의 생사는 현재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지금에 와서 부질없는 것이지만, 그는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그를 괴롭히던 부상을 극복하고 축구 선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아예 없어진 것이 아니었으며, 한때 그의 동료였던 올름처럼 축구 선수가 아니더라도 지도자의 길을 밟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절망감에 사로잡힌 나머지 내려서는 안 될 결정을 내렸고, 그 대가는 비참한 죽음이었다.

글=김태석 기자()

출처 : 
http://www.besteleven.com/National/news_world_01_view.asp?iBoard=57&iIDX=107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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