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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해외] 예루살렘 사전에 평화는 없는가

무슬림사랑 2019-01-17 (목) 11:53 1개월전 67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핵심인 예루살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유대 국가와 이슬람 세계의 협력과 공동관리뿐”이다. 이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예루살렘의 세계적인 석학들을 통해 알아보았다.

에후드 올메르트.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이스라엘 총리를 지냈다. 2018년 11월20일 텔아비브. 73세의 전직 총리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에 스마트워치를 찬 차림으로 기자들을 맞이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팔 분쟁)의 해법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바스(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와 나는 영구적 평화조약에 매우 가까이 갔다.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하게 현실적이다.”

이라 샤르칸스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원로 정치학자이자 행정학자다. 미국 명문 위스콘신 대학 종신교수직을 버리고 1975년 이스라엘로 왔다. 지금은 히브리 대학 명예교수다. 시오니즘(유대인이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수 있다는 신념) 이론에 밝고 이스라엘 보수파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지난해 11월18일 예루살렘의 자택. 샤르칸스키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두 국가 해법도 있고 세 국가 해법도 있지만, ‘노 솔루션(no solution)’이 정확하다. 이·팔 문제는 현실에서 작동할 해법이 없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로, 이·팔 분쟁은 국제정치의 화약고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 올메르트 전 총리와 샤르칸스키 명예교수는 이스라엘이 이 문제를 보는 양대 노선을 대변한다. 둘 다 ‘현실’을 말하지만, 결론은 정반대다. 올메르트는 두 국가 해법, 그러니까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만들어 이스라엘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방안이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샤르칸스키는 그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왜 이다지도 복잡할까. 텔아비브에서 만난 최용환 주이스라엘 대사가 힌트를 줬다. “예루살렘에 꼭 가보길 바란다. 수천 년 역사를 가진 성지(聖地) 문제가 결국 오늘의 이·팔 분쟁과 직결된다.” 예루살렘.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도시다. 1947년 유엔은 이 도시에 ‘특별 국제체제(Special International Regime)’ 지위를 부여했다.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는 특별 국제관리구역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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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을 상징하는 풍경은 황금빛 돔이다. 이름은 ‘바위 돔’. 이슬람 사원이다. 691년에 지어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에서 메카와 메디나 다음으로 신성시하는 3대 성지다. 이슬람교 역사의 초창기에는 신도들이 기도하는 방향(‘키블라’)도 메카가 아니라 예루살렘을 향했다. 무슬림의 믿음에 따르면,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잠을 자던 중 대천사 가브리엘의 인도를 받아 날개 달린 말을 타고 ‘가장 깊은 성소’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무함마드는 아버지들(아담과 아브라함)과 형제들(모세와 예수)을 만난 후 하늘로 올라가는 기적을 행한다. 무슬림은 이 장소가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 아랍명 ‘하람 알샤리프’)이라고 믿는다. 바위 돔이 서 있는 그 자리다. 기독교 최고의 성지도 예루살렘에 있다. 예수가 처형당한 골고다 언덕에 세워진 ‘거룩한 무덤 성당’이 있다. 바위 돔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다. 

그리고 물론, 예루살렘은 어느 종교보다 먼저 유대교의 성지였다. 성전산은 유대교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다. 아브라함이 신의 뜻에 따라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던 장소가 여기다. 성전산에는 유대교 성전이 고대에 두 차례 세워졌다 파괴된다. 유대교는 이 성전산에 제3 성전이 지어지는 날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그 성지 중의 성지를 1300년 넘게 이슬람 사원이 차지하고 있다. 초정통파 유대교인들은 바위 돔을 파괴하고 성지를 재건하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슬람 세계 전체와 충돌하는 3차 세계대전까지 가능한 어마어마한 불씨다.

바위 돔 서쪽에 성벽이 하나 있다. 서쪽 벽, 더 유명한 별명으로는 ‘통곡의 벽’이다. 유대인들은 이 성벽이 제2 성전의 잔해라고 믿는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생각하는 장소다. 구시가지 언덕에서 통곡의 벽과 바위 돔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도시의 복잡한 운명을 이 한 장면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지(聖地) 문제가 오늘의 이·팔 분쟁과 직결된다”라는 최용환 대사의 말이 실감난다. 돈이나 영토는 잘만 협상하면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성지에는 민족과 종교의 영혼이 달려 있다고 사람들은 믿는다. 영혼은 대체 어떻게 나눠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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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방주 이스라엘’ 설계도의 탄생

이것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인 동시에, 서로가 ‘옳다고 믿는 이야기의 싸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편에 선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믿는다. “유대인은 2000년 동안 박해를 받으면서도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온 민족이다. 특히 히틀러의 유대인 대학살은 씻을 수 없는 비극이었다. 유대인은 자신의 생명을 보호할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 탄생할 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민족 정체성도 국가를 갖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유대인들은 둘 다 있었다.” 반대편에도 탄탄한 이야기가 있다. “팔레스타인은 2000년 동안 아랍인들이 살아온 땅이었다. 유대인은 영국 제국을 등에 업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고 학살했다. 지금도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장벽으로 가두고 있다. 사실상 인종분리 정책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 


두 이야기 중 하나가 완전한 거짓이라면 이·팔 분쟁은 진작 해결되었을지 모른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두 이야기 모두에, 피맺힌 진실과 속 편한 아전인수가 뒤섞여 있다. 그것이 이·팔 분쟁을 진정으로 까다로운 난제로 만든다.


1895년 1월, 프랑스 파리의 법정에서 유대인 육군 장교 한 명이 군사기밀 유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는다. 이 장교의 이름은 알프레드 드레퓌스. 당대 최대의 반(反)유대주의 스캔들인 ‘드레퓌스 사건’이다. 당시 유대인들은 프랑스와 같은 문명국가에 동화되어 ‘유럽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드레퓌스 사건은 서유럽 문명국가조차도 유대인이 동화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동화’는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이 재판정에 유대인 기자가 한 명 있었다. 테오도어 헤르츨은 이 재판을 취재한 후 <유대 국가>라는 책을 써서, 유대인이 자신의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이념을 주창한다. 현대 시온주의가 여기서 탄생했다. 헤르츨의 묘는 이스라엘 국립묘지 한가운데 가장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유대 민족주의 운동은 당대의 세계 제국인 영국으로부터 ‘밸푸어 선언’을 끌어내는 데 결국 성공한다. 1917년의 일이다.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가 내놓은 이 선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가 건설되도록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유대인의 방주 이스라엘’의 설계도가 이렇게 탄생한다. 


밸푸어 선언이 나올 당시에 팔레스타인 일대의 인구 60만명 중 유대인은 10만명을 밑돌았고, 나머지는 전부 아랍인이었다. 설계도는 있었으나 실제 건국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였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나, 히틀러가 유대인 대학살을 자행한다. 600만명이 죽어 나간 대학살은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로 격상시켰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대학살 피해자들이 생존을 위해 국가를 요구하고 나설 때, 현실이야 어쨌든 정당성만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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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이야기’가 중첩되는 예루살렘의 역설

야드바솀.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서쪽으로 차로 20분쯤 달리면 나오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이름이다. 유대인 대학살의 끔찍함을 생생히 증언하는 전시 내용은, 인간이 다른 인간의 존엄을 어디까지 파괴할 수 있는지 증언한다. 마지막 전시실에서 돌연 분위기가 달라진다.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하는 영상이 전시되고 있다. 건국의 정당성은 유대인 대학살로 결정적으로 입증된다고 이스라엘은 선언한다. 


그러나 야드바솀이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 이야기는 야드바솀에서 북쪽으로 10분쯤 차를 달리면 나오는 크파르 사울 정신병원에서 들어야 한다. 1951년에 문을 연 공립병원이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차지한 이 땅은 한때 ‘데이르야신’이라는 팔레스타인 마을이었다. 1948년 4월9일, 이스라엘 시오니스트 120여 명이 이 마을을 공격했다. 이들은 집집마다 수류탄을 던지고, 성인 남자는 물론 여자와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아랍인을 학살했다. 정확한 숫자는 논란이 있으나 최대 254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르야신 학살은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의 아랍인 살해와 추방 사건들 중에도 가장 유명하고 상징적인 사건이다.


차로 10분 거리를 두고 야드바솀과 데이르야신이 나란히 존재하는 도시. 어디서든 ‘두 이야기’가 중첩되는 예루살렘 특유의 역설이다. 1·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영국의 유명한 장군 버나드 몽고메리는 팔레스타인 복무 경험에 진저리를 내며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은 아랍인을 죽이고 아랍인은 유대인을 죽인다. 앞으로 50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몽고메리는 너무 낙관적이었다. 50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둘은 죽고 죽이는 관계를 빠져 나오지 못했다.


‘두 이야기’가 충돌하는 역설을 가장 잘 표현한 지도자가 있다. 의외의 인물이다. 이스라엘 건국을 선언한 당사자인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건국 8년이 지난 1956년에, 세계 유대인의회 의장인 나훔 골드만에게 “내가 아랍인 지도자라면 절대 이스라엘과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의 나라를 빼앗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지만, 우리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아니다. 반유대주의, 나치, 아우슈비츠가 그들의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우리가 여기 와서 그들 나라를 빼앗았다는 사실 하나만 보고 있다. 왜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여야 할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늘 가슴에 품었을 질문을,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가 정확히 표현했다. 이 또한 역설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결국 ‘국가’에 대한 두 이야기다.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유대인이 국가를 가질 자격을 입증하는 귀환의 서사다. 이 건국서사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사실상 완성된다. 이제는 아랍 국가들도 대부분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를 묵인한다.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 영토이던 요단강 서안 지구와 이집트 영토이던 가자 지구를 점령해 현재까지 점령 중이다. 역사가 페리 앤더슨은 이를 “근대사에서 공식적으로 가장 긴 군사점령”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을 팔레스타인 국가로 만들어 돌려줄 것인가, 돌려준다면 어떤 형식으로 할 것인가. 이것이 이·팔 분쟁의 핵심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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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사람은 국가를 가질 권리 없나?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도 자신의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서사다. 유대인이 제 국가를 가질 권리는, 이 땅에 2000년간 살아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가를 가질 권리와 충돌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가를 가질 권리를 부정할 수 있을까? 국가를 가질 권리는 유대인만의 특권인가? 이것은 이스라엘의 지식인들에게 만만찮은 숙제를 던진다.


“우리는 이스라엘이 ‘주이시 데모크라시(유대 민주국가)’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국가 해법이 유일한 길이다.” ‘피스나우’는 이스라엘의 평화운동 단체로 국제적인 명성을 떨쳤다. 지난해 11월16일 텔아비브. 피스나우의 사무국장 야리브 오펜하이머의 키워드는 ‘유대 민주국가’였다. 오펜하이머는 이 공리로부터 두 국가 해법을 솜씨 좋게 유도해낸다. “지금 가자 지구에는 인종분리 장벽이 서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판 아파르트헤이트다. 이 상태로는 이스라엘이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고 장벽을 걷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이스라엘 시민으로 받아들인다면? 팔레스타인의 인구 증가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에, 언젠가 이스라엘은 아랍인의 국가가 된다. 이것은 유대 국가라고 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을 독립시키는 두 국가 해법이 유대 민주국가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이것은 힘겨운 싸움이다. 유대 국가와 민주국가는 긴장이 필연이다. 민주국가란 구성원의 인종과 종교를 묻지 않는 체제인데, 유대 국가는 바로 그것을 묻는다. 2018년 7월19일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는 ‘유대인 민족국가법’을 통과시켰다. 유대인이 배타적 자결권을 갖고, 팔레스타인 점령을 합법화하며, 아랍어의 공용어 지위를 박탈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법은 기본법이어서 우리의 헌법에 준하는 지위를 갖는다. 이스라엘은 자주 유대 국가로 기운다.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국가를 가질 권리는, 명시적으로 부정되지는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부정된다. 

지난해 11월20일 예루살렘. 이스라엘 외교부 정보분석관의 비공식 브리핑을 들을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이·팔 분쟁의 해법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얼핏 논점 일탈로 들리는 답을 내놓았다. “팔레스타인이 역대 가장 분열된 상태다. 아바스가 화합을 강조하지만 불가능해 보인다. 하마스(가자 지구를 실질적으로 통치하는 무장투쟁집단)가 협상에 관심이 없고, 이스라엘 파괴에 집중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 정부를 세울 리더십이 없다는 의미다. 이러면 두 국가 해법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해진다. 두 팔레스타인 지도부가 적대적으로 경쟁하는 환경은 실질적인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다. 국경 양쪽으로 적대적인 무정부 영역을 둘이나 끼고 싶은 나라는 없다. 


이스라엘 외교부의 비공식 브리핑은 다시 샤르칸스키 명예교수의 한마디를 떠올리게 만든다. 기자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시오니즘이 말하는 ‘자기 국가를 가질 권리’란 모든 민족에게 보편적인 것인가, 유대 민족의 특권인가?” 그의 대답은 간접적이면서 의미심장했다. “민족이라는 개념은 매우 유동적이다. 유대인이 자기 국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유대인 자신들의 의식적인 결정이었다.”


이 노대가의 말은 이런 의미로 들렸다. 유대인은 자신들의 의지로 국가를 갖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국가를 만드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으로써 ‘국가를 가질 자격’을 입증했다. 지구상의 모든 민족이 이런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며(그랬다면 국가의 수는 터무니없이 늘어날 것이다), 의지와 능력을 가진 민족만이 자격을 부여받는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은? “가자의 하마스는 서안 지구의 리더십과 화합이 불가능하다.” 노대가는 팔레스타인은 그럴 자격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암시한다. 결론은 단호하다. “노 솔루션.” 시오니즘은 보편과 특권의 미묘한 경계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19세기에 헤르츨이 ‘국가를 가질 권리’를 상상했을 때, 그의 구상은 ‘다른 민족들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에게도 주어질 보편적 권리’에 좀 더 가까웠다. 헤르츨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연방정부를 꾸려 공존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반면 21세기 이스라엘 주류의 목소리는, 팔레스타인이 유대인과 같은 자격을 갖고 있는지 의심하는 쪽으로 기운다. 

올메르트 전 총리에게는 이 모든 논의가 쓸데없는 소리로 들린다. 그는 확신에 찬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분열은 문제가 아니다. 그들만큼이나 우리도 분열돼 있다. 리더십이 중요하다. 아바스는 내가 총리일 때 사인을 했어야 했다.” 맞는 얘기다. 이스라엘 정치가 이·팔 분쟁 해법의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분열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인 동시에 이스라엘에도 현실이다. 하지만 전부 맞는 말인지는 의심스럽다. 도대체 어느 정도로 초인적인 리더십이 있어야 ‘그들과 우리의 분열’을 극복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을까? 오펜하이머가 보여주었듯, 두 국가 해법이 아닌 다른 대안은 ‘유대 민주국가’ 유지가 안 된다. 현상 유지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샤르칸스키가 보여주었듯, 두 국가 해법은 너무나 초월적인 리더십을 요구한다. 자꾸 “노 솔루션”이 머리를 맴돈다.


“예루살렘을 모든 종교의 수도로 만들자”

이제 마지막 한 명을 만날 차례다. 모세 마오즈. 히브리 대학 트루먼 연구소 연구교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중동 분쟁 전문가다. 그는 인상적인 서두로 말을 시작한다. “국가는 매우 중요하다.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가 있어야 안보가 보장된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이 정상국가로 작동하는 것이 이스라엘 안보에도 이익이라는 의미다. 지금 상태는 이스라엘이 사제 로켓포와 자살폭탄 테러라는 비대칭 전쟁에 대응해야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정점으로 하는 이스라엘 보수파의 현상유지론, 그러니까 이스라엘 유일 합법정부 유지론은 이 대목에서 치명적 약점이 있다. 


현상 유지는 또 다른 이유로도 이스라엘 안보를 위협한다. 다시, 문제는 예루살렘이다. “이스라엘이 지금처럼 예루살렘 성지를 점령하는 상태가 계속될 경우, 수니파와 시아파 국가들이 반(反)이스라엘 연합을 형성할 수 있다. 최악의 가능성은 이란과 터키의 연합이다.” 익숙한 예루살렘 딜레마다. 출구가 있을까. 마오즈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예루살렘은 분할이 아니라 협력이 답이다. 나누지 말고, 공동으로 관리해야 한다. 협력해서 예루살렘이 모든 종교의 수도가 된다고 상상해보라.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게 다녀갈 수 있는 모든 종교의 수도. 그것은 위대한 협력이 될 것이다.” 예루살렘 공동관리. 이 아이디어는 역사적으로 낯설지 않다. 시오니즘의 아버지 헤르츨부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예루살렘을 특별 영토로 만들어 누구의 소유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소유가 되도록 해야 하며, 성지는 모든 종교인의 공동소유가 되게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도시의 딜레마는, 세계에서 가장 진취적인 해법을 통해서만 해소 가능해 보였다. ‘국가를 가질 권리’는 결국 성지에서 배타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차원에서 딜레마는 풀리지 않는다. 유대 국가와 이슬람 세계의 협력과 공동관리. 이것은 분명 벅차 보이는 목표다. 우리는 그렇게 이타적인 종이 아니다. 종교 문제가 걸려 있으면 특히 그렇다. 하지만 길이 그것밖에 없다면,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내는 종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까? ‘국가를 가질 권리’를 뛰어넘는 협력의 모델이 태어날 수 있을까? 그것도 유대인과 무슬림 사이에? 예루살렘은 진정으로 흥미로운 과제를 던지는 도시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KPF 디플로마-중동 전문가 교육과정’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출처:https://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3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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