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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칼럼 [Column]


[국내] “순수 이슬람 복귀” 살라피 운동… 서구 민주주의 수용 주장한 집단도 존재

무슬림사랑 2019-06-15 (토) 17:15 2개월전 1308

 
<19> 서구식 근대화의 충격과 살라피 운동의 등장 
 ※이슬람 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서 들려드립니다.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이 이슬람 명분을 내세워 테러를 서슴지 않는 자들이 신봉하는 이념을 보통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원리주의(fundamentalism)는 서구인들이 붙인 명칭이며 실상 무슬림들은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면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에 속한 자들은 스스로를 뭐라고 부를까. 그들은 대부분 자신을 ‘살라피(salafi)’ 운동가라고 부른다. 살라피 운동은 이슬람 초기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정치‧종교 운동을 가리킨다. 그런데 스스로를 살라피 운동가라고 규정짓는 집단 가운데는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처럼 테러를 일삼고 외래 문물을 무조건 배격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슬람 사회가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외래 문물을 적절히 수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부류도 있다. 언뜻 보기에 같은 이슬람주의를 표방하는 것 같지만 내부적으로 다른 의견을 가진 다양한 집단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살라피 운동, 급진적 서구화 정책에 대한 반발 
19세기와 20세기 초 이슬람 세계는 오스만 제국 중심의 구질서 체제가 무너지고 서구 식민지로 전락하는 혼돈의 시기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흥 지배 엘리트 계층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취약한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종교 계층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정책을 취했다. 신흥 엘리트는 서구식 제도와 문물의 도입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삼았던 데 반해, 전통적 이슬람 가치관은 시대착오적인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하고 이를 가혹하게 억압하기 시작했다.
신흥 엘리트가 급진적 근대화 정책을 추진하며 종교 세력을 탄압한 사례는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나타났다. 이집트에서는 알바니아 출신의 장군 무함마드 알리가 1805년에 집권한 후 근대식 공장과 학교를 세우고 청년들을 유럽으로 유학 보냈던 것과 대조적으로 울라마(이슬람학자)에 대해서는 모스크의 재산을 압수하면서 세력 기반을 무너트리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한편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창건한 무스타파 케말은 과거 오스만 제국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헌법에서 이슬람이 국교라는 조항을 삭제하고 모든 종교학교와 수피교단을 폐쇄하는 강경책을 추진했다. 이란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25년 왕위에 오른 레자 샤는 “우리는 용모에서뿐만 아니라 의상에서도 서구화가 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여성들의 차도르 착용을 금지하고 울라마의 종교 기금을 몰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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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타파 케말. 터키 공화국의 창건자로 급진적 서구화와 세속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각 국가에서 신흥 엘리트가 추진한 정책은 종교주의자들에게 커다란 좌절감과 위기감을 심어 주었다. 종교주의자들은 무분별한 서구화와 근대화가 몰고 온 시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대응책의 하나로 살라피 운동을 선택했다. 이슬람 초기의 순수성을 회복하자는 모토를 내건 살라피 운동은 아랍어로 ‘경건한 선조’를 뜻하는 ‘살라프 살리흐(salaf salih)’란 말에서 유래했다. 여기에서 선조(살라프)는 바로 예언자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 및 추종자를 의미한다. 살라피 운동의 추종자들은 작금에 이슬람 세계가 서구 식민지로 전락하고 심지어 그 내부에서조차 신흥 엘리트에 의해 종교적 가르침이 탄압받게 된 사태를 맞이하게 된 근원은 바로 이슬람의 본질이 흐려졌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배타적 살라피 운동과 절충적 살라피 운동 
살라피 운동의 추종자들은 이슬람 초창기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당면한 모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살라피 운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두 갈래로 나뉘게 되었다. 첫째는 서구식 근대화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는 배타적 살라피 운동이며, 둘째는 무분별한 서구식 제도 수용은 반대하지만 이슬람 사회의 근대화에 도움이 된다면 선택적으로 받아드릴 수 있다고 생각한 실용적이면서 절충적인 살라피 운동이다.
배타적 살라피 운동의 대표적인 예로는 와합 운동, 사이드 쿠틉, 알카에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와합 운동은 18세기 중반 아라비아 반도에서 무함마드 빈 압드 알와합에 의해 시작되었다. 오늘날 서구에서 ‘와하비즘’으로 불리는 그의 사상은 사우디 왕국의 건국 과정에서 주요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와합 운동 신봉자들은 예언자 무함마드 시대가 살았던 7세기 이슬람 사회를 이상향으로 제시했고, 그 이후에 생겨난 모든 사상과 제도는 정통에서 벗어난 것으로 취급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문명은 페르시아, 투르크, 그리스 등 주변 문명의 유산을 흡수하고 융합하면서 발전했다. 그러나 와합주의자들은 주변 문명과의 교섭이 이슬람의 순수성을 훼손한 주범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역사관에 의거하여 와합주의자들은 서구문명도 당연히 배격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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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쿠틉. 나세르의 서구화 정책을 비판했으며, 그의 사상은 알카에다와 같은 이슬람 테러 단체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배타적 살라피 운동을 주도한 대표적 인물로서 사이드 쿠틉을 빼 놓을 수 없다. 그는 1950~60년대에 이집트에서 활약한 이슬람주의자였다. 쿠틉은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었던 나세르가 이집트를 서구식 세속적 민족주의 국가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보였다. 쿠틉은 1964년에 출간한 ‘길가의 이정표’라는 책에서 인류의 역사는 ‘이슬람 상태’와 ‘자힐리야 상태’ 간의 끊임없는 대립으로 전개되어 왔다고 설파했다. 자힐리야는 이슬람이 도래하기 이전의 ‘무지한 상태’를 일컫는다. 그는 나세르가 이슬람식 통치 방식 대신 서구식 제도를 받아들임으로써 이집트를 자힐리야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고 비판하며 나세르를 상대로 지하드(성전)를 선포하는 것은 무슬림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결국 쿠틉은 나세르에 의해 체포되어 1966년에 처형되었다. 하지만 그의 사상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 등과 같은 극단적 이슬람 테러 단체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그렇지만 모든 살라피 운동이 배타주의적 성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일부 살라피 운동가들은 과거 무함마드 시대의 이슬람 전통 속에서도 얼마든지 근대적 과학과 이성을 수용하고 서구식 제도와 공존할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로 이집트 출신의 지식인이었던 무함마드 압두와 라시드 리다를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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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압두. 이슬람의 정신적 토대 위에서 서구의 과학과 이성의 수용을 주장했다.

무함마드 압두는 19세기 말 이집트의 종교 중심지인 아즈하르대학교 출신의 사상가로서 이슬람의 근대적 재해석을 강조했다. 그는 이성과 계시, 종교와 과학은 얼마든지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한 합리주의적 신학자로서, 중세 이후 이슬람 세계가 퇴보의 길을 걸은 것은 과거 전통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는 이슬람의 근본과 모순되지 않는다면 서구의 과학과 이성을 수용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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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시드 리다. 초기 이슬람 사회의 이상과 서구식 민주주의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20세기 초 이집트에서 활약한 라시드 리다는 서구의 민주주의 제도 수용을 주창한 살라피 운동 지도자였다. 그는 살라피 운동가로서 과거 무함마드 시대의 사회제도를 모든 이슬람 국가가 따라야 할 모범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는 역사를 해석하는 시각이 와합이나 쿠틉과 같은 배타주의자들과 완전히 달랐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이슬람 초기 시절에 칼리파는 구성원들과 ‘슈라’라고 불리는 협의의 방식을 통해 국가를 통치했는데, 점차 이 전통이 사라지고 칼리파가 전제 군주처럼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근대 유럽 사회가 왕족과 귀족의 권력 독점을 종식시키고 공화제와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사례를 이슬람 사회가 본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보기에 서구식 의회와 민주주의 제도는 초기 이슬람 사회가 추구했던 이상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따라서 이를 수용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다양한 부류의 무슬림을 어떻게 볼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 세계를 오해하는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는 모든 구성원을 몰개성적인 동질적 집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슬람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구성원이 천편일률적으로 똑 같은 세계관, 이데올로기, 가치관, 정치적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오해의 시작점인 것이다. 상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순수 이슬람으로의 복귀를 주장한 살라피 운동만 하더라도 다양한 부류의 집단이 존재하지만 각자가 주장하고 지향하는 바는 전혀 다를 수 있다. 무슬림들 가운데는 이슬람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현대 글로벌 사회가 요구하는 보편적 인권, 남녀평등, 민주주의 가치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외로 많다. 이들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와 같은 배타적이고 폭력주의 성향을 지닌 집단과 뚜렷이 구분된다. 우리가 이슬람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다양한 집단을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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