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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이집트에서 핫팬츠라니, 너무하지 않아?

무슬림사랑 2014-01-21 (화) 23:00 5년전 2127

고대 이집트인들은 파라오가 죽으면 저승으로 갈 때 타야 할 태양선을 무덤 옆에 함께 묻었다. 현대에 와서 사람들에게 발견된 태양선은 보수되어 지금은 피라미드 옆 태양선 박물관에 전시돼 사람들이 볼 수 있다. 이보와 나흘라가 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한때는 피라미드의 일부였을,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바위 위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피라미드는 본래 매끄럽게 직선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를 가지고 있었다. 쿠푸 대피라미드와 카프라 피라미드는 흰 석회암을 표면을 덮을 화장석으로 사용했고 멘카우라 피라미드는 붉고 아름다운 화강암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 이집트를 점령한 무슬림들이 무기 창고를 짓거나 이슬람 사원을 만드는 데 그 아름다운 마감석들과 피라미드의 돌들을 가져다 썼다. 

그러니 현재 피라미드의 계단 모양은 사실 적나라한 피라미드의 속살인 셈이다. 살짝 지루해질 무렵 그들이 박물관에서 나왔다. 이제 부지런히 걸어 기자 피라미드 세 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파노라마 존(Panorama zone)에 갔다가 스핑크스를 본 뒤 얼른 이곳을 떠나기로 했다.   

이슬람 국가에서 핫팬츠라니!

파노라마 존이라 불리는 피라미드 뒤 먼 사막 한 가운데를 향해 가는 길, 낙타와 마차를 끄는 상인들이 다가와 우리를 귀찮게 군다. 처음에 100파운드라고 했던 터무니없는 가격은 우리가 아랍어로 퉁명스레 대꾸하며 코웃음을 치자 50으로, 다시 30으로 20으로 곤두박질친다. 깎아주는 가격에 대해서 너희는 아랍어를 할 줄 아니까, 친구니까라고 별별 이유를 갖다 붙인다.

갖은 애를 쓰지만 우리가 들은 체도 않자 결국 다른 이를 찾아 발걸음을 돌린다. 십여 분을 꼬박 걸었을까, 겨우 도착한 파노라마 존에서 바라보니 시꺼먼 공기로 둘러싸인 카이로 시내와 피라미드가 한눈에 보인다. 그때 옆에서 이보가 우리를 툭툭 치며 속삭인다.

"Look at the Russians."
(저 러시아인들 좀 봐.)

그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온통 백인뿐인 단체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느라 바쁘고 이집션들은 그들의 사진을 대신 찍어주며 박쉬시(팁)를 노리고 있다. 모국에 대한 자부심 같은 건 눈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게 된 지 오래다. 

돈이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에, 관광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세계 곳곳의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정작 자신의 나라를 즐기지 못한 채 그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지갑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미처 자부심을 느낄 새도 없이, 미처 자존심을 지킬 새도 없이, 지독한 가난은 그들의 고개를 짓눌렀다.

옆에선 다른 이집션 상인들이 짧은 옷을 입은 소녀들의 맨살을 한 번 만져보겠노라고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을 알려준다며 은근슬쩍 그녀들의 팔뚝을 잡아끈다. 그 중 한 소녀의 바지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짧았는데, 핫팬츠 정도가 아니라 엉덩이가 비죽 튀어 나와 누구나 그녀의 엉덩이를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사실 이집트는 매우 더운 나라지만 습도가 거의 없는 사막 기후여서, 불쾌지수는 오히려 한국보다 낮다. 한여름에도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혀주기 때문에 길고 통풍이 잘 되는 옷을 입으면 맨살이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보다 더위를 덜 느낄 수 있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타 문화에 대한 이해나 배려 따위는 없는 몰상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보수적인 무슬림 국가에 방문해서는 맨살을 다 내놓고 다니는 저런 무식한 사람들 덕에 현지인 남성들이 외국인과 여성에게 갖는 그릇된 섹슈얼 판타지는 점점 커져만 간다. 히잡과 몸매를 가리는 여성들의 의복 문화를 가진 나라에서 살아온 그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저 소녀가 그들이 몰래 보던 포르노에 나오는 배우와 달라 보일 것이 없는 거다. 

그렇게 형성된 삐뚤어진 성 인식에 무고한 여성들이 피해를 입는다. 그러면 짧은 핫팬츠와 민소매티셔츠를 입고서 돌아다니던 소녀들과 그런 그들을 그대로 방치하면서도 주변에서 집적대는 현지인들만 경멸스럽게 쳐다보던 소녀의 부모들은, 그리고 그들이 사는 나라의 언론은 말할 것이다. "무식하고 폭력적이고 여성의 인권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 이슬람 국가의 덜 문명화 된 무슬림들이 사고를 쳤다"라고. 자신들의 몰상식한 행동은 기억하지도 못한 채.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면 이보는 내게 언제나 이렇게 말했다.

"Sophie, there is no black and White. and always coin has two sides. 
There is nothing we can judge easily."
("소피, 어떤 것도 악함과 선함 둘 중에 하나만 있는 건 없어. 동전엔 언제나 양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쉽게 판단 할 수는 없어.") 

또 여럿이 의견을 나누던 중 누군가 어느 한 쪽에 대해 일방적으로 맹렬한 비판을 할 때면 이보는 언제나 말했다.

"I don't believe in God, But there is a quote what I really like in the bible. 
Jesus said, 'The one is innocent could throw a first stone to her."
("난 신을 믿진 않지만, 성경에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 예수가 말하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그 여자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었지.")
[*성경의 본 구절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래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 등과 차이점이 있음을 밝힘.]

그의 말처럼, 그 어느 쪽도 비난만 받을 수 없고, 그 어느 쪽도 완전히 결백할 수 없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하지 않았나. 한 사람의 어떤 행동이 나오기까지 그의 천성, 성격만이 아닌 외부의 환경 또한 큰 영향을 미치기에 그의 행동은 곧 그 사회를 반영한 거울이자 이 시대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어떤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하지 못한 상태로 주워들은 반쪽짜리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감히 판단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아왔기에, 가슴이 갑갑해진다.

함께 마시는 차 한 잔에 샘솟는 우정

씁쓸함과 화남이 마음을 휘젓고 다니는 중에 무심코 시계를 보니 이브라힘에게 전화를 주기로 한 시간이다. 얼른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알로?"
"알로! 이브라힘, 나에요 소피!!"
"오, 소피! 안 그래도 당신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조심해서 잘 도착했나요? 나쁜 사람들을 만나거나 하진 않았죠?"
"아니요. 덕분에 안전하게 도착해서 친구들과 줄곧 같이 있었어요! 친구들에게 당신 이야길 했더니 그들도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해요."
"정말요? 아 너무 좋아요! 그럼 제가 지금 피라미드로 갈게요. 아부일홀 앞에서 보도록 해요." (아부일홀은 스핑크스의 아랍어 명칭으로 '공포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아니에요. 우리가 나가면 되니까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되요"
"하하, 걱정 말아요. 우리 집에서 피라미드까지는 걸어서 십 분도 안 걸려요. 입장료도 내지 않으니까 염려 붙들어 매요. 피라미드를 나오면 또 상인들이 들러붙을 테니 꼼짝말고 스핑크스 앞에서 만나는 걸로 해요!"
"아, 정말 고마워요. 스핑크스까지 걸어가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천천히 나와서 도착하면 연락해요."
"오케이, 일랄리까.(곧 봐요.)"

드디어 스핑크스에 도착했다. 코가 깨진 '공포의 아버지'. 그와 사진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주변은 북적거렸다. 어떻게 이브라힘과 만나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그가 저 멀리서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용케도 군중들 속에 섞여 있는 우리를 찾아낸 것이다. 나흘라와 이보 그리고 이브라힘은 서로 인사를 했다. 아랍어를 거의 못하는 이보는 영어를 잘 하는 이브라힘을 만나 이집트에 대해 물어볼 수 있게 되어 적잖이 기쁜 눈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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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라힘의 집으로 가는 길 평범한 이집트의 거리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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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길을 건너니 다시 이집트처럼 무질서하고 나귀 똥으로 범벅이 된 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 하나 건넜을 뿐인데 이리도 다를 수가 있는 건지. 다시 내가 아는 이집트에 돌아온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해졌다. 이브라힘이 자신이 매일 가는 카페에 가서 우선 차를 한 잔 하자며 카페로 들어갔다. 

차(茶) 문화는 아랍인들에게 있어서 무슬림들이 하루에 다섯 번 기도를 하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고 또 어쩌면 의무적이기도 한 습관이었다. 일어나서 차를 마시고, 친구를 만나면 차를 마시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게 되면 차를 대접한다. 그런 뒤 밥을 먹고 나면 차를 마시고, 자기 전까지 차를 마시고 잠든다. 음주가 금기시되는 무슬림 국가에서 담배와 차가 없었다면 그들의 기호식품은 또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있었을까?

어두운 실내에는 더위를 피해 실내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도미노를 하는 중노년의 아저씨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이집트의 영락없는 로컬 카페다. 그는 네 잔의 차와 쉬샤(물담배)를 주문했다.

알고 보니 이 카페에서 그는 자신만의 쉬샤를 구입해 놓고 매일 이곳에서 쉬샤를 하며 일을 하거나 친구들에게 메일을 보낸다고 했다. 우리의 주문을 받은 아저씨는 이집트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빛의 속도로 바삐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차를 내어 오거나 빈 잔을 치우고 있었는데, 너무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이집트에서는 되레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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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미노 게임 중인 남자들
ⓒ 김산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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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서너 시간 전에 이브라힘과 만나 차를 마셨던 나는 설탕을 뺀 블랙 티에 나나(페퍼민트)를 넣어 마셨다. 어두운 실내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빛은 카페 밖에서 내리쬐는 햇볕뿐이었다. 옆에 앉은 세 명의 이집션 할아버지들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채 꼭 어린 소년들처럼 열띤, 동시에 자못 진지한 표정들로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런데, 호기심이라면 꼬마 아이 저리 가라 할 정도인 이보가 그새 목을 길게 빼고선 할아버지들의 게임을 흘끔거린다. 당장이라도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는데 놀이에 한창 열중하고 계신 할아버지들을 방해할까봐 기회만 노리고 있는 모양새가 영락없는 여섯 살 꼬맹이다.

보다 못한 이브라힘이 여섯 살 아들의 엄마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 그의 설득이 먹혀 들어간 건지, 같은 남자끼리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게임에 열중하던 백발의 소년들은 기꺼이 파란 눈과 금빛 수염을 가진 낯선 유러피언 꼬맹이를 놀이에 끼워주기로 한 것 같았다.

신이 난 이보가 쪼르륵 그들 옆으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내 이브라힘을 포함한 다섯 명의 남자는 게임에 빠져들었다. 쉰에서 예순은 되어 보이는 중년의 이집션 세 명과 삼십 대 이보, 이십 대의 이브라힘까지, 문득 내가 남자들의 단순함을 불평할 때마다 이보가 입에 달고 살던 말이 떠오른다.

"We men nerver grow up."("우리 남자들은 평생 어린애야.")

"그럼에도, 난 내 나라를 사랑해요"

다행히도 나의 어린 친구는 그 게임에서 연달아 패배함으로써 금세 놀이에 흥미를 잃었고, 나와 나흘라가 굳이 그를 설득할 필요도 없이 그는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브라힘의 집으로 향하는 길, 골목은 더 좁아졌고 풍경은 더 단순해졌다. 그의 집에 도착하니 귀여운 꼬마 아가씨가 문을 연다.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방을 보여주었다. 남자 방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잘 정돈되어 깔끔한 그의 방에는 이집트가 아닌 듯한 장소에서 찍은 사진도 걸려 있었는데, 그가 미국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라고 했다. 다시 거실로 나오니 그의 다른 여동생이 히잡을 두른 채 차를 내어왔다. 오늘만 세 잔째다. 찻잔을 잡던 이브라힘에게 이보가 언제 미국에 있었냐고 물었다. 그는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차분하지만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의 누이는 미국에서 살고 있어요. 그녀가 결혼한 후 나는 그곳을 여행할 겸, 공부도 할 겸 한동안 머물렀죠. 그리고 이집트로 돌아왔어요. 미국은 멋졌어요. 화려했고 멋진 자연이 있었고 푸르렀고 자유로웠죠. 하지만 나는 내 나라가 그리웠어요. 낙타가 돌아다니고,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내 나라 이집트요. 가끔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나는 내 고향을 사랑해요. 

아까 난 무료로 피라미드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던 것 기억나요? 사실 우리 가문은 대대로 기자 지역의 주지사(Governor)를 지낸 집안이에요. 지금의 기자(GIZA)는 카이로시의 일부가 되어 버렸지만 여전히 우리 집안의 역할은 예전과 같아요. 그래서 난 언제나 피라미드와 기자 지역, 그리고 이집트에 대한 책임감을 줄곧 가져왔어요. 

내 나라에는 여전히 바뀌어야 할 것들이 많아요. 사기를 치는 장사꾼들, 낙후한 교통 상황과 대기 오염,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건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겠죠. 하지만 난 여기서 도망쳐서 나 혼자서만 행복하게 살면서 이곳을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못난 나라여도 내 나라이니까요.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들이 관광자원인 건 알지만, 그걸 보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 가져온 낯선 문명과 문화들이 너무 한 번에 몰려왔고, 미처 우리가 걸러낼 준비도 되기 전에 우리 삶에 들어와 버린 거예요. 특히 혁명 이후 우리는 아주 깊은 혼돈 속에 빠져 있어요. 젊은이들의 노력이 아주 중요한 때죠. 

그래서 나는 적어도 십 년간은 내가 나고 자란 이곳에 희망을 두고 일하고 싶어요. 게다가 카우치 서핑을 하면서 이집트를 방문하는 많은 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다양한 사람과의 소통에 대한 갈증해소, 그 두 가지 모두를 얻게 되요. 그러니 이곳에서의 삶도 그리 썩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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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많고 착한 이브라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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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만난 칼리드와 이브라힘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크게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자신에게 귀 기울이게 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아주 많이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고, 진심으로 자기 자신을 아낄 줄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자신과 소통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고 노력한다는 뜻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남을 깎아내리며 자기 위안을 삼지도 않는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만의 색깔을 알고, 그러면 그 색깔에 반해 자연스럽게 그 주변엔 사람이 모이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이들에게 그들은 친근하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아쉬움과 함께 끝나곤 했다. 오늘 이브라힘의 집에서 카우치 서핑을 하기로 했다는 한국인 남자 게스트 두 명에게 약간의 문제가 생긴 듯했다. 그가 가봐야 하는 일인 듯했다. 이브라힘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우리는 괜찮다는 의미의 미소를 지었다.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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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방 내부 좁은 공방의 내부는 일하는 아저씨들과 놀러온 동네 사람들로 붐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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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공예에 관심이 많은 이보에게 이브라힘이 보여주기로 한 은 수공예 공방에 들렀다 가기 위해 우리는 집을 나섰다. 두 평 남짓한 공간에는 세 명의 사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명의 사내와 한 명의 사내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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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르투시 문자를 새기고 있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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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성인이 하기에도 벅차 보이는 일들을 능숙하게 척척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고사리 손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아 안쓰러울 정도로 허옇게 트고 거친 작은 손으로 야무지게 세공품을 식히고, 광을 내고 색을 입혔다. 

그들이 만드는 은 공예품들은 영어 알파벳을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로 바꾸어 새겨주는 카르투시 목걸이 펜던트나 반지 따위였다. 은이라고 속여 팔면서 모양새까지 조악한 관광지의 그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섬세하고 아름다운 세공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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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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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공예 가게에서 일하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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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와 나흘라가 제품을 고르며 주문하는 동안 나는 아이가 일하는 옆에 서서는 계속 말을 걸었다. 아이의 미소는 수줍었고 자신을 쳐다보는 내가 내심 부담스러운 듯 긴 속눈썹을 내리깔고서는 솔질을 하는 데만 집중했다. 내가 나이를 묻자 열 살이란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자 배시시 웃으며 고개만 끄덕인다. 

다시 카이로 중심가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가는데 길에서 놀던 곱슬머리 여자아이가 우리를 따라오며 손을 흔들었다. 긴 골목이 끝날 때까지, 소녀는 우리와 손 흔들기 놀이를 멈추지 않았다. 버스를 잡은 이브라힘은 끝끝내 버스비까지 대신 내주고서야 우리를 놓아 주었다. 우리가 사막에서 돌아온 뒤 시간이 되면 그와 함께 그의 집 지붕에서 피라미드 뒤로 저무는 석양을 보기로 했다. 어김없이 '인샤알라'와 함께. 

우리가 탄 미니버스에는 갓난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있었다. 사방의 차들이 뿜어대는 매연과 먼지바람이 열린 창문을 타고 들어와 아이의 몇 안 되는 머리칼을 흩뜨려놓았다.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아이는 어미의 품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아마 아이에게 들이치는 바람을 막기 위해 허공에 반쯤 떠 있는 어머니의 손 덕분이리라. 

"모든 일이 일어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오늘 밤은 모레면 혼자 요르단으로 먼저 돌아가는 나흘라와 함께 하는 마지막 밤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롬과 다시 만나 레바논 레스토랑을 갔다가 나일강에 통통배를 타러 갈 예정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언제나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다. 나일강 물 위에 몸을 맡기고 마지막 밤을 보내려는 두 명의 동양 아가씨들과 곱슬머리 체코 아저씨를 태운 버스는 무심하게도 느리게 느리게 달려간다. 속도가 줄어들자 잦아든 바람에 그제야 여인은 파르르 힘겹게 공중에서 지탱하느라 경련이 난 왼손을 쥐었다 펴며 살며시 내려놓는다. 

출처: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9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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