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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한국에 온 이주자,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슬림사랑 2019-02-04 (월) 00:09 19일전 52

명절에는 한복 입은 이주자들이 TV에 나와 한국에 관한 퀴즈를 풀곤 한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이주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주자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유학생과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로 한국에 머무르는 이들의 고민을 들어봤다.


■결혼이주여성, 적응에서 교류로 

충북 괴산에 사는 마리아 페 아바바오(49)는 ‘마반장’이라고 불린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양육지도사와 인근 고교의 다문화 강사, 유치원·경로당 영어강사, 경로당 청소 봉사활동, 필리핀 결혼이주여성 모임 활동 등을 하다보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공식적 활동 외에도 충북 지역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상담을 처할 때마다 적극적으로 나선다. 이주여성의 ‘사랑방’ 역할을 자처하는 것은 자신의 초창기 한국생활도 매우 힘들었던 기억 때문이다. 

마리아는 1995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괴산에 정착했다. 당시 괴산의 결혼이주여성은 통틀어 5명이었다. 그는 “처음에 한국어 몰라서 참 힘들었다. 임신하고 아이 낳을 때는 친정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더 힘들었다. 같은 이주여성끼리 친정엄마처럼 산후조리도 챙겨주고 정도 느끼게 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들끼리 몰려 다니는 것을 안 좋게 생각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생겨나면서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집집마다 방문교사를 보내 이주여성의 한국어 습득을 돕고, 이주여성들이 센터에 다니면서 뭔가 배운다는 생각에 ‘필리핀 여성들끼리 몰려다니며 뭉치는 것’에 대한 동네사람들의 시선도 좋아졌다. 필리핀결혼이주여성 모임은 지난해 괴산고추축제에서 필리핀식 돼지고기 꼬치구이 등 전통음식을 팔아 번 수익금 90만원을 장학금과 저소득층 지원에 쓰라고 군민장학금과 괴산군에 각각 기부했다.

마리아는 “예전에는 ‘한국인 다 됐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지금은 ‘왜 한국인이 다 돼야만 좋은 거지? 필리핀인도 좋은 건데’라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주여성만 한국에 적응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이주여성과 살아가는 주민들도 이주여성의 고향과 문화적 배경에 관심을 갖고 교류해야 진짜 다문화란 생각을 한다. 이주여성의 고향방문, 이주여성 친정 식구들의 한국방문 등을 지원하는 일에 관심이 많다. 

‘결혼이주’라는 형태로 이방인을 먼저 받아들였던 농촌에서는 ‘정착’을 넘어서 ‘교류’를 고민하는 단계지만 여전히 장벽이 있다. 일본에서 유치원교사였던 나가세 준코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1997년 괴산에 정착, 지역아동센터인 ‘국경없는 아동교실’을 운영한다. 저소득층 가족의 보육부담을 덜고, 어머니의 모국어도 가르치면서 자긍심 있는 다문화 가정 아이를 길러내는 것이 목적이다. 마리아도 이 센터의 영어교사로 일한다. 이처럼 지역에 뿌리 내렸지만 국적은 여전히 굴레다. “일본에도 노부모가 있어서 일본 국적을 유지하니 은행이나 관공서를 이용할 때 여전히 불편한 점이 많다”고 전했다. 수십년 동안 지역사회에 머물면서 헌신하고 한국인 아이를 낳고 한국인 가족의 일원이 되어도 ‘국적법’은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한다. 

올해 괴산에서 다문화 가정 출신 첫 입대자가 나온다. 마리아는 “1세대 이주여성들이 주로 딸을 낳다보니 이제사 입대자가 나온다. 지역에서는 다문화 가정이 워낙 많아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을 흔히 볼 수 있었던 지역 아이들이 군대 혹은 대학, 직장으로 새로운 세계를 만났을 때도 차별받지 않고 자긍심 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 관건이다.


■유학생이 본 10년 만에 달라진 한국 

우즈베키스탄에서 자란 갈라노바 딜노자(30)는 어린 시절 <대장금> <주몽> 등을 보고 자랐다. 물리교사였던 어머니에게 한국 유학의 기회가 있었는데 딜노자가 너무 어려 포기했다. 딜노자는 “한국에서 공부한다는 엄마의 꿈이 어느덧 내 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2015년 인하대에서 다문화 박사고과정을 밟아 곧 졸업을 앞두고 있다. 딜노자는 “<대장금>괴 <주몽>의 신비한 이미지가 있었는데 한국은 생각 이상으로 서구적인 국가라 놀랐다”고 말했다. 장학금을 받고 다니고 기숙사에 살면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이 학업을 마쳤다. 딜노자는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어 ㅇ주 맞족스럽고 학교 안에서는 큰 차별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는 다를 수도 있을 거 가타”고 말했다. 

딜노자의 전공은 ‘다문화교육’이다. 그는 ‘다문화’라고 하여 다양한 문화에 대해 배울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다문화’는 ‘외국인노동자’, ‘결혼이주여성’, ‘탈북자’, ‘유학생’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구자로서 ‘다문화’란 개념에 비판적이다. “다문화로 불리는 사람들은 (사회의 주류와) 분리된 존재란 생각을 갖게 만듭니다. 어머니가 결혼이주여성인 아이들이 모계를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아요 또 소위 다문화가족의 아이들이 아닌, 재혼한 부모를 따라 들어온 중도입국청소년들은 한국 사회에 전혀 섞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주자를 다문화라고 부르는 이상 진짜 다문화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다문화란 말은 궁극적으로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요?”

딜노자는 한국에서 2~3년 간 더 머무르며 다문화 정책에 대해 연구할 생각이다. 2~3년 후에는 다른 나라로 공부하러 가거나 유네스코 등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다.

카릴 샐리(29)는 이번이 두번째 한국생활이다. 2009년에 서강대에서 어학연수를 했고 2017년 8월부터 서울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집트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고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다 보다 깊이 공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샐리는 “한국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라 오게 돼 감사하다. 또 재밌는 곳이다. 나서면 놀 곳이 정말 많고 공원도 잘 돼 있다”고 말했다. K-팝이나 드라마 외도 윤동주의 <서시>의 한 구절인 ‘오늘도 주어진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를 좋아한다.

반면 “10년 전보다 외국인에 대한 시선은 안 좋아진 것 같다”고 전했다. 무슬림으로서 돼지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피하기 위해 식당에서 물어보면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요즘은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진다. 2017년쯤 식당에서 무언가 “IS(이슬람국가)가 순두부찌개 주문한다”는 말을 들어 충격을 받았다. 이집트에 관한 책을 보면 잘못된 사실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속상했다. 가령 아랍인들은 아내를 스무 명씩 둘 수 있다고 표현한다거나, 모두 돈이 많은 모습처럼 그려진다거나. 이집트 사람들은 다인종으로 이뤄져 있는데 하나같이 가무잡잡한 모습으로 묘사돼 있기도 했다.

샐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통해 유치원이나 고등학교에서 일일교사로 활동하며 이런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는 “한국 정부가 교류에 상당히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또 교류는 하면 할수록 마음을 열고 친해질 기회는 많다고 생각한다. 룸메이트랑 수다를 떨다가 ‘나랑 고민하는 게 같네’라고 해서 ‘같은 인간이니까 같지’라고 그랬다”고 말했다. 오는 설에는 한국인 혹은 유학생 친구들과 어울려 연휴를 만끽할 생각이다.

■코리안드림과 장시간노동, 이주노동자 

다문화 가족이나 유학생에 비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과 교류가 적었다. 한국어가 서툴고 워낙 노동시간이 길어서 일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5일 늦은 밤 안산 다문화거리에서 만난 인도네시아 출신 이주노동자 리스(30)는 ‘겨울이 추워서 힘들지만 휴가는 여름에만 쓴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더워’와 ‘비와’가 있고 한국에는 ‘더워’와 ‘추워’가 있다. ‘더워’에는 휴가 있고, ‘추워’에는 계속 일한다. 추워는 좀 힘들다.” 리스는 지난해부터 경북 김천의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일주일씩 주·야간 근무를 교대로 한다. 주간은 오전7시30분~오후8시까지, 야근은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날 7시까지 일한다. 월 1회 연차를 써서 쉴 수 있다. 이렇게 일해서 월 260만원~290만원 가량을 번다. ‘여름’과 ‘겨울’이란 단어는 잘 몰랐지만 ‘주간,’야간‘, ‘금속용접’, ‘연차’의 뜻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들은 본국에서 치르는 한국어 시험에서 일정 수준을 넘겨야 한다. 리스는 “280점 넘어서 공장에 올 수 있었다. 그 아래면 배를 타야 한다”고 말했다. 선원으로 일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국 원양어선의 악명높은 근로조건은 인도네시아에서도 잘 알려진 듯했다. 2014년 베링해에서 무리하게 조업하다 침몰해 53명의 사망자를 낸 사조산업의 오룡호 선원 60명 중 35명이 인도네이사인이었다. 

리스는 인도네시아에서는 5년 간 버스기사로 일했다. 아내와 7살 아들, 부모님, 결혼 안 한 여동생과 결혼한 누나가 있다. “일은 어디서나 힘들다. 하지만 한국은 돈 번다 해서 왔다”고 말했다. 숙식은 공장에서 해결한다. 한국인, 베트남인, 인도네시아인이 섞여 일한다. 워낙 노동시간이 길어서 다른 한국인과 어울릴 기회는 없다. 추석과 설 연휴에도 일한다.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거나 친구 만나 고향음식 먹으며 모국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낙이다. 대구나 부산으로 여행가거나 서울 가산동으로 옷을 사러 가기도 한다. 한 달에 한 번 돌아오는 쉴 기회를 이용해 안산에 친구를 만나러 왔다는 리스는 이날 빨간색 비니모자와 흰색 점퍼를 세련되게 차려입고 나타났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3년 동안은 큰 문제가 있지 않는 한 취업처를 바꾸지 못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정적으로 인력을 공급받는 방편이지만 이주노동자 입장에서는 부당한 대우를 당하거나 노동조건이 가혹해도 3년 간 참아야 하는 ‘굴레’로 작용한다. 처우를 묻는 질문에 그는 “(공장 사람들이) 잘 해준다. 그래도 야간은 너무 힘들다. 스트레스 받는다. (안 다치게)조심조심 일 한다”고 말했다. 리스는 오는 설 연휴에도 부지런히 기계를 돌릴 에정이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 1월 28일자에 실린 ‘[다시 쓰는 인구론] -파독 노동자 잊었나…‘인간다운 삶’ 기본권 보장 않는 한국‘에 실린 박스기사를 온라인으로 길게 쓴 것입니다.
원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1280600025&code=940100#csidxd383b577e4c85738dbf6993708f02b7 

출처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902032123001&code=920100#csidx1d79166a9323bae8e2220d019b065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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