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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레바논)] 이스라엘군이 유일하게 패배한 헤즈볼라는?

무슬림사랑 2019-01-11 (금) 21:59 2개월전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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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즈볼라가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것이 2006년의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이다.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당시부터 시작된 수많은 아랍-이스라엘 전쟁에서 아랍 연합군은 계속적인 패배를 기록하였지만 2006년 헤즈볼라가 유일하게 승리하면서 그 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이슬람권에서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현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장기간의 내전에서도 건재한 것 또한 헤즈볼라의 역할 때문이다.  

헤즈볼라를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국제적 테러단체로 지명하고 있지만 레바논 내에서는 헤즈볼라가 유일한 비국가적 무장단체이며 한편으로는 합법적인 정당이다.

이러한 헤즈볼라의 형성 배경은 레바논의 복잡한 내적 요인과 주변국가들, 특히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관계 및 이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우선 레바논은 18개의 공식적인 종파로 구성된 모자이크 국가이다. 그러므로 종파에 소속된 인구가 많을수록 정치적인 영향력도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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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기간인 1943년 레바논은 프랑스의 식민 통치로부터 독립하면서 국민협약(National Pact)에 의하여 종파별로 국가의 3권을 분점 시킨 세계적으로 유일한 국가이다. 


이러한 권력 분배는 1932년의 공식적인 인구통계조사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 통계에 준하면 당시 기독교 인구가 54%로 다수를 차지했으며 그중에 마론파가 28.8%로 수적 절대적인 우위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순니파 무슬림이 22.4% 그리고 쉬아파 무슬림이 19.6%를 차지했었다. 

이러한 인구 분포에 따라 가장 중요하고 권력이 집중되어 있는 대통령직은 마론파에 할당되고, 수상직은 순니파 그리고 국회의장직은 쉬아파에 할당되었다.  

즉 레바논에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파 중에서도 마론파 출신이어야만 한다. 

이러한 종파 간의 권력 분점은 국회, 공무원, 국립 대학교 등 모든 공공 기관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권력 분배는 태생적으로 정치적인 불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경과하면서 각 종파 간의 인구 증가에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함으로 주기적으로 권력을 재분배하지 않을 경우 항상 기존의 정치 체제가 위협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다. 

레바논 내전을 종식하는 1989년의 타이프 협정에서 이러한 종파 간의 권력 분점을 폐지하자는 의견이 거론되었으나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어느 종파도 그들의 권력 분점을 양보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레바논은 1932년의 인구통계가 현재까지 유일한 공식적인 인구조사이다. 

그러므로 레바논의 현재 인구 수는 모두 추측, 또한 비공식적인 집계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권력 분점 체제에서 정치적 경제적으로 가장 소외된 집단이 쉬아파이다. 

레바논 쉬아파는 주로 남부와 서부의 베카(Bekaa) 계곡에 거주하는 농민들이다. 

독립 당시는 인구가 적었지만 농촌의 특성상 인구 증가가 빨랐다.  

이에 반하여 도시에 거주하는 기독교인과 순니파들은 상대적으로 인구 증가가 낮았다. 

인구는 중가 했지만 정치적으로 소외된 쉬아파는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러한 쉬아파의 정치적, 경제적 소외를 해소하고자 쉬아민중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이란에서 온 무사 알-사드르(Musa al-Sadr)였다.  

무사는 아침은 남부에서 점심은 베이루트에서 저녁은 베카 계곡에서 먹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쉬아인들의 정치의식 고취에 노력하면서 1975년 내전이 시작되자 쉬아 민병대인 아말(Amal)을 창립하였다. 

그러나 무사는 1978년 8월 리비아의 지도자 카다피의 초청으로 리비아에 간 후 행방불명되었다. 

아말이 창설자의 부재로 빛을 잃고 있을 때 두 차례에 걸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헤즈볼라 창설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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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Operation Litani)의 목적은 남부 레바논에 주둔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이스라엘과의 국경 지역에서 철수시키는 것이었다. 

이 당시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약 1,000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는데 그 다수가 쉬아인이었다. 

인명 피해뿐만 아니라 많은 가옥과 건물이 파괴되고 잦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생계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쉬아인들은 이스라엘의 침공을 불러온 팔레스타인 게릴라에 반감을 같게 되면서 침략자인 이스라엘군에 협조하였다.  

1982년의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도 팔레스타인 게릴라 소탕이 목적이었다. 

쉬아인과 아말은 이번에도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소탕하는데 협조하였다.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까지 점령하면서 PLO 지휘부는 튀니지로 도피하였다. 이러한 침략 중에 당시 레바논에 주둔하던 시리아군과 이스라엘군 간에 전투가 벌어졌으며 결과는 시리아군의 참패로 이어졌다.  

이같이 이스라엘군의 침공으로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새로운 점령군인, 이스라엘군이 주둔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스라엘군에 협조한 아말의 정체성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내부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들 갈등 세력 중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반 이스라엘 성향을 가진 자들이 모여 헤즈볼라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후세인 무사위(Husain Musawi)는 아말에서 탈퇴하고 1982년 6월 베카계곡에 '이슬람 아말(Islamic Amal)'을 조직하였다.  

이 단체는 기존의 모든 반 이스라엘 저항단체에 불만을 표시하면서 레바논에 이란과 같은 쉬아 혁명을 주장하면서 호메이니를 그들의 지도자로 추대하게 되었다.  

창설 당시의 중요 인물들로는 투파일리(Shaikh Subhi Tufaili), 압바스 무사위(Sayyid Abbas Musawi), 아민(Shaikh Ibrahim Amin) 및 현재의 헤즈볼라 지도자인 나스랄라(Shaikh Hassan Nasrallah) 등이 이었다. 

이들은 1982년 8월 테헤란에서 개최된 이슬람운동협의회에서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와 면담하면서 단체의 이름으로 코란의 문구를 사용한 '신의 정당,' 즉 '히즈브알라(hizb allah)'로 호칭하기로 하였다(영어로는 일반적으로 'Hezbollah'로 표기함). 투파일리를 지도자로 추대하면서 귀국 후 이들은 이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베카 계곡을 중심으로 반 이스라엘, 반 서구 투쟁을 전개하게 되었다. 

1982년 11월 남부 레바논의 티이르에 위치한 이스라엘군 본부에 자살폭탄 공격을 시작으로 1983년 레바논 주재 미국 대사관과 프랑스 대사관 및 베이루트 공항에 위치한 미 해병대 막사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 수많은 인질 및 항공기 납치사건 등이 이어졌지만 그 배후 세력에 대하여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1985년 2월 헤즈볼라가 공개서한을 통하여 이러한 테러의 배후 세력으로서 그 정체를 드러내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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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이란의 호메이니가 사망하고 레바논 내전도 종식되면서 헤즈볼라는 그간의 무력 투쟁 노선을 포기하고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였다.  

특히 1992년 제3대 사무총장에 취임한 하산 나스랄라를 중심으로 실용주의 노선이 확고히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러한 실용주의 노선의 일환으로 헤즈볼라는 1992년 레바논 총선에 참여하였으며, 2005년부터는 내각에도 진출하면서 레바논 내에서 합법적인 정당으로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헤즈볼라가 이끄는 야당이 내각을 장악하면서 레바논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집단으로 등장하였다. 또한 헤즈볼라는 아프리카, 중남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타이프 협정에서 결의한 레바논 내의 모든 민병대의 무장 해제 규정을 따르지 않고 계속해서 무장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헤즈볼라는 반 이스라엘 저항단체이기에 예외라는 것이다. 

그 결과 2006년에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를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전쟁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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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4일 만에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에서 철수하면서 아랍 역사상 처음으로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군을 물리친 단체가 되면서 전 이슬람 지역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그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우상시 되었다.  

전쟁 후 유엔은 이러한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의 또 다른 충돌을 예방하고자 유엔레바논평화유지군(UNIFIL)을 보강하였으며 한국도 이에 동참하고자 300명이 넘는 동명부대를 레바논 남부 티이르 지역에 파병하고 있다.  

※저자인 박찬기 전 명지대 교수는 한국중동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메나코르 대표이사로 재직중이다.

출처:
http://www.nocutnews.co.kr/news/5088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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